[관웅그래/그래른] 기생집 썅년 준식 & 애기 기생 장그래 썰 ① (7/22)

ㄴ미생 기타 2015. 7. 23. 23:31


조선시대 (나름 탑클라스) 기생집 설정으로. 즐겨찾는 나으리들과 기생집 썅년 준식, 이제 갓 들어온 애기 기생 장그래. 장안 최고급 기생집에서 제일 잘나가는 에이스 준식은 어느날 신참을 받게 되는데 이름이 장그래라 하였으니.


몰락한 양반 뭐 이정도는 아니더라도 꽤 잘 살았던 장사꾼의 외아들이었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빚쟁이 쳐들어오고 어머니는 몸져눕고 이런 코스로 자연히 기생집에 팔려오게 된 것. 외모가 워낙 탁월해서 깨끗한 몸으로 여기까지 오게 됨.


그런 그래를 보는 준식은 처음부터 단단히 맘에 들지 않음. 자기는 아주 밑바닥부터 구르고 굴러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저게 뭐라고 집안 쫄딱 망하고도 여기까지 발에 먼지 하나 안 묻히고 왔담? 성준식 썅년모드 발동. (원래 썅년...


그래는 천성이 순하고 속으로 잘 참는 아이였음. 준식은 젊음도 가지고 얼굴도 예쁜 그래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음. 자기는 고생하느라 이쁘고 어린 시절 다 지났는데...물론 난 지금도 인기 많지만! 물론 난 지금도 예쁘지만! 이런게 준식의 기본 마인드.


이 기생집은 워낙 클라쓰가 남달라 고관대작들이 오는 곳으로 유명했음. 기생들 얼굴도 좋고 밀담 나누기도 좋고. 자주 오는 무리들은 최영후 영의정과 그의 무리들. 김부련 우찬성, 오상식 판서, 천관웅 대사헌... 아무튼 현 정권 실세들이 들락날락.


하루는 최 영의정 계파이자 한양 기생집은 꽉 잡고있다는 한석율 도사가 찾아옴.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는, 요즘으로 치면 새끼마담 역할을 하는 김동식. 원래 한석율은 성준식이 전담하고 있었음. 한석율이 성준식을 찾으면 성준식이 앙칼지게 튕기는 식.


그 날도 동식은 한도사 왔다고 성준식을 호출했는데, 준식은 그 날 따라 달거리땜에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음. 아 한도사 저 귀찮은 새끼. 맨날 싫다는데도 왜 찾아오고 난리야. 무슨 뜻인진 모르지만 소시오패스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뭐 이러는 것임.


그래서 평소에는 일부러 그래한테 자리도 안 내주고 자기가 들어가고 이랬던 것을, 일부러 자기 찾는 한도사를 그래의 방에 들여보냄. 준식의 방에 들어갈줄로만 알고 있던 석율은 동식이 안내하는 방 앞에서 "아니 이보게 여긴 어딘가?" 어리둥절행.


동식은 조금 난처해하지만 말빨 세워가며 오늘 준식이가 몸이 안 좋다, 달손님 오셨으니 앙탈도 더할 것, 준식이 성깔 아시지 않느냐... 얘는 새로 온 푸릇푸릇한 앤데 얼굴이 아주 예쁘니 도사님도 좋아하실거라고 한보따리 푸는 것.


한편 그래와 나름 지내보며 성정을 파악한 준식은 그래가 한도사같은 성격 질색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음. 이걸로 귀찮은 한도사도 떠넘기고, 그래도 손님한테 밉보이고 일타 이피!!! 하며 기분좋아하는 준식. 역시 ㅆㄴ...


암튼 석율은 애기방이라고 하니 어떤 애긴지 보자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감. 들어가는 순간 뭔가 발광체가 있는지 아주 눈이 부셔오는 석율. 그 정체는 혼자 오도카니 청승맞게 앉아있는 장그래의 얼굴이었음. 얼굴이 어찌나 흰지, 입술이 어찌나 빨간지.


"오오! 애기야 네 잃어버린 오라버니가 이제야 왔다." 처음부터 넉살을 피우며 그래 앞에 앉는 한석율. 그래는 점점 심해지는 준식의 구박때문에, 그리고 차도를 알 수 없는 어머니땜에 맘이 속상하던 참이었음. 그래가 침체된걸 단박에 눈치채는 석율.


"우리 이쁜 애기는 뭐 안 좋은 일이 있나?" 그 말에 내리깔았던 눈을 올려 석율의 얼굴을 보는 그래. 호색한으로 소문난 것 만큼이나 잘생긴 얼굴로도 소문난 한도사. 눈썹도 바르고 쌍꺼풀도 짙고 코도 길고 잘 생긴 사내가 그래 앞에 앉아있음.


"아, 아니옵니다. 전 그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그래. 태어나서 이렇게 잘 생긴 사람은 처음 봤다고 생각함. 평소 여자같이 예쁘장한 자기 외모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래는 그야말로 '미남'인 석율을 보고 일종의 충격을 받은 것.


아무튼 석율은 특유의 말재간을 발휘하며 손짓까지 거들어 그래를 기쁘게 해줌. 그래도 우울했다가 높으신 나으리가 저렇게까지 자길 위로해주니 나중엔 비실 웃음이 나오고. "웃으니까 예쁘네." 그래가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는 걸 본 석율이 그렇게 말해줌.


조금 분위기 미묘해지는 두 사람. 석율은 오늘 그저 준식 데리고 수다나 떨어볼까 하고 온건데 뜻밖의 진주를 발견했다고 생각함. 매너도 좋게 그래를 건드리지도 않고 그래의 방을 나오는 석율. 동식이 어떠셨냐고 조르르 좇아와 한도사에게 물음.


석율은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고, 동식은 신나서 사실 저 아이가 아직 아무의 손도 타지 않았다고, 어떤 나으리가 머리를 올려주실지 사뭇 궁금하다고 하며 일부러 석율을 자극함. 기방에 '새 애기', 즉 처녀가 들어올 경우 비싼 돈을 주고 사는 것이 관례.


석율은 그래가 처녀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람. 저렇게 예쁜 애가? 한편으로는 그 말을 듣자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석율. 과거를 좋은 성적으로 붙고 도사까지 올라온 석율은 줄을 대고 더 빨리 출세하고 싶었음. 그러나 아직 영전은 까마득.


자신과 동기인 장백기 도사, 안영이 도사가 있었으나 장원을 차지했던 안 도사가 아무래도 빨리 영전할 것처럼 보였음. 점점 초조해지던 찰나, 기방에서 저런 보물을 발견한 것. 석율은 궁중 최고 실세인 최 영의정의 사람들에게 접대를 하기로 맘 먹음.


최 영의정 직속은 김부련 우찬성이었으나 아직 도사인 석율의 급에 우찬성을 모실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 아래 있는 오상식 판서와 천관웅 대사헌을 모셔보기로 함. 기방에 큰 돈을 주고 그래의 첫날밤을 오 판서에게 올리려는 것.


석율은 내 조만간 높으신 나으리들을 모시고 올테니, 그 때까지 저 아이를 아무에게도 보이지 말라 신신당부하고 큰 돈을 미리 내어놓음. 반색을 하며 알겠습니다 나으리, 하는 동식. 역시 기방 최고 영업왕 동식이었음. 한도사가 가고 준식이 얼굴을 내밈.


"야, 뭐냐?" "어 오늘 한 건 올렸다 야. 조만간 높으신 분들 오신댄다." 묵직한 은화 꾸러미를 짤랑거리는 동식. "장그래 때문에?" 준식이 그래로 인해 심기가 불편한 걸 알고 있던 동식은 잠시 멈칫 함. "어...겸사겸사지 뭐."


준식은 화가나서 그날 저녁 더욱 그래를 구박함. 온 기방 마루 구석구석 물걸레질을 해야 하는 그래. 준식은 그래도 석율이 그래에게 빠지거나 한게 아니라 은근 다행으로 생각함. 평소엔 한도사를 개 닭보듯 하는 준식이었는데 이게 뭔 바람일까나?


암튼 그렇게 한 주, 두 주 하고도 사흘이 더 되어서야 한도사의 종을 통해 연락이 옴. 내일 저녁 나으리들을 뫼시고 올 터이니 준비를 잘 하고 있으라고. 큰 자리이기 때문에 기방의 내로라하는 기녀들 총출동. 당연히 준식도, 그래도 있음.


석율은 특별히 그래를 오 판서 옆에 앉혀놓으라고 당부. 준식은 당연히 가장 높은 분을 자기가 뫼시어야 하는데 장그래가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펄펄 날뜀. 준식을 달래느라 아주 혼이 빠지는 기방 사람들. 어쨌거나 기방 에이스(?)는 준식이었기에.


결국 그래는 준식에게 따귀까지 맞음. 흰 얼굴에 벌겋게 손자국 나서 멍하니 뺨 쥐고 있는 그래. "야 너 진짜 왜그래~!" 동식이 씩씩거리는 준식을 말림. 그래의 입 끝이 조금 찢어졌음. "아 내일 나리들 오시는데 얼굴 망가트려놓으면 어떡해~!"


결국 동식도 짜증을 내고 마는데, "흥!"하고 모르는 척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준식. "어후 저거저걸 그냥~~" 동식은 한숨을 쉬다 그래를 챙김. "너..얼굴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아보였음. 결국 치료받고 약 바르는데.


다음날, 오 판서와 천 대사헌을 모시고 기방에 온 석율. "나으리 어서오십시오." 복도부터 쫙 서있다 인사를 하는 기생들. 오 판서는 "어 그래 허허허"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고 뒤따르는 천 대사헌은 묵묵. 나으리들이 착석하고, 그 곁에 앉는 기생들.


준식은 전에도 한 번 오 판서를 모신 적이 있었음. 요란하게 아는체를 하며 아양을 떠는 준식. 그러다 그래를 끌고 와서 "이 아이는 새로 들어온 아이인데 좀 멍청하긴 하지만 말을 잘 들으니 나으리 맘에 드실 것이옵니다."라고 소개함.


그리고 자신은 천 대사헌 옆에 앉는 준식. 이왕 이렇게 된 거, 늙은(?) 오판서는 장그래한테 맡기고 자기는 잘생긴 새 나으리하고 재미나 봐야겠다! 이러고 있는 거. 석율은 오늘 온 사람들 중 위계로는 젤 쩌리라 그래도 준식도 차지하지 못함.


오 판서가 상석에 앉고, 천 대사헌과 마주앉은 석율. 기생들의 화려한 연회가 펼쳐지고. 석율도 옆에 한 명 끼고 술을 마시긴 하는데 영 눈 앞의 그래와 준식 때문에 집중이 안 되는 것. 마치 구여친과 현여친을 한꺼번에 빼앗긴 듯한 기분.


어쨌든 로비를 해야하긴 하니 열심히 오 판서와 천 대사헌의 비위를 맞춰주는 석율. 그 와중에 준식은 잘생긴 관웅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 찰싹 달라붙어 오호홍 거리면서 난리가 났음. 맞은편에서 눈쌀이 찌푸려지는 석율. 그러나 정작 천관웅은 돌부처상.


오상식 판서는 또 그 나름대로 "이녀석 보게! 글쎄 바둑을 둘 줄 안다지 뭔가!" 하며 그래를 칭찬하기 여념이 없음. 하 하 하 참 영특하네요,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지만 오 판서 품에 안긴 그래를 보는 마음 또한 편치 않음. 한 도사 고난의 날...


암튼 진탕 놀고 만족한 나으리들, 드디어 밤이 깊어 오 판서가 그래의 어깨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궁에서 온 파발마. 최 영의정이 오 판서를 급히 호출하였다 하는 것. 상식은 기생이고 뭐고 당장 입궐해야 한다며 후다닥 나가버리고.


순식간에 남게 된 관웅과 석율. 석율은 당황했음. 바로 장그래가 오늘 접대의 핵심이었는데...!! 그 때 아직 천 대사헌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미침. 꿩 대신 닭이라고, 대사헌께 그래를 넣어볼까. 한편 관웅은 준식이 술을 너무 먹여 어지럽던 차였음.


관웅은 잠을 자게 방을 하나 내달라고 청하고, 그 말을 다른 쪽으로 알아들은 석율과 동식은 허겁지겁 그래를 관웅의 방으로 밀어넣음. 이번에도 또 자기 자리를 빼앗기게 돼서 승질이 날대로 난 준식. 동식은 그래를 붙잡고 잘 모셔야 한다 당부 중.


그래는 어차피 이런 날이 오겠다 싶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얼굴을 한 번이라도 튼 사람-예를 들자면 석율-과 하고 싶었음. 날 구해달라는 눈빛으로 석율을 쳐다보는 그래. 석율도 아련함이 가득한 그래 눈빛을 보니까 뭔가 맘이 흔들림.


그리고 눈치 빠른 준식은 둘의 눈빛이 심상찮음을 알고, 평소에는 튕기기만 하고 제대로 대해주지도 않던 석율에게 팔짱을 딱 낌. "나으리, 오늘은 제가 뫼시겠사옵니다." "어...어? 어??" 엉겹결에 준식에게 질질 끌려가는 석율. 물끄러미 보는 그래.


결국 그래는 관웅이 든 방으로 들어가야 했음. 그러나 불안한 마음으로 들어가 보니, 이미 관웅은 펴놓은 비단 이부자리 위에 대자로 뻗어 자고 있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는 그래. 그냥 나오면 동식에게 야단맞을 테고, 그렇다고 깨울 수도 없고.


결국 방 구석탱이에 앉아 관웅을 지켜보던 그래는 어느새 잠이 들고 마는데. 다음 날 아침, 관웅이 일어나 보니 어제의 그 애기 기생이 저쪽 구석에서 쭈그리고 자고 있는 거라. 안 그래도 앳돼보이는 얼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이불 위로 옮겨주는 관웅.


그렇게 방을 슬쩍 나오는데, 마침 또 복도에서 준식의 방에서 나오던 석율과 마주침. "아, 대사헌 나리, 간밤 잘 보내셨습니까?" 석율은 얼마나 시달렸는지 피곤함이 잔뜩 배인 얼굴로 관웅에게 물음. '밤새 뭘 했길래 저리 쪽 빨린 얼굴이 되었누.'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는 관웅. 간밤 석율은 모처럼 질투심이 타오르는 준식의 손에 붙들려 평소라면 감히 해보지도 못했을 온갖 것들을 해버린 것임. 오죽하면 정력가로 소문난 석율이 정기를 빨린 얼굴이 되었겠는가.


아무튼 석율에겐 나름 흡족한 밤이었음. 맨날 틱틱대고 얼굴만 맞대면 으르렁거리던 준식이 예상 외의 화끈한 밤을 선사해 주었으니. 저도 모르게 씨익 웃는 석율. "??"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웅은 그저 '이 도사 참 모를 사람이로군' 같은 생각만..


석율도 곧 정신차리고, 관웅에게 그 아인 어떠셨냐고 묻기 시작하지만 관웅은 대충 대답하며 질문을 넘겨버림. 표정이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에 석율은 제멋대로 이 나으리가 수줍어 하시는구나, 넘겨짚고 그래와 밤을 보낸 것으로 생각해버림.


관웅은 뭔가 마지막으로 동식에게 말하려는 것 같다가, 곧 거두고 "나는 이제 돌아가야겠네" 하면서 기방을 나감. 황급히 따라 모시려는 석율. 그러나 등 뒤에서 기척이 나 뒤돌아보니, 어느새 그래가 방에서 나와 있었음. 석율을 바라보는 그래.


석율은 자신의 풀어진 옷가지며 머리 등을 눈치채고 머쓱해져 "하하..우리 애기 깼니?"라고 어색하게 그래에게 말을 건넴. 그래는 그런 석율을 한참 바라보다가 "네. 나으리는 '좋은 향기'가 나시네요."라고 말함. 옆에서 깜짝 놀라는 동식.


그래는 간밤 자길 관웅에게 바치고 준식과 보낸 석율을 질타하고 있었던 것. 아니 얘가 지금 손님께 무슨 말을...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동식. 가까이 석율이 묵었던 방이 있었기에, 담배 한 대 피며 이 모든 대화를 들으며 웃고있는 준식.


석율은 그래도 조금 그래에게 미안함이 있었는지, "아...애기야, 오라버니까 또 놀러오마. 오늘은 바빠 이제 가보아야겠다." 하면서 그래의 말랑한 뺨을 살짝 꼬집고, 석율 특유의 눈꼬리가 휘어지고 보조개가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기방 밖으로 퇴장.


그리고 동식과 고개 숙인 그래 사이에 흐르는 침묵. 동식은 화가난 듯 했음. 그래에게 뭐라고 하려 입을 떼는 순간, 방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긴 담뱃대를 입에 문 준식이 속곳 차림으로 나옴. 순식간에 준식에게 시선이 쏠린 두 사람. 준식은 웃고 있었음.


"아주 놀구 있다, 놀구 있어." 그래의 곁에서 비웃는 표정으로 알짱거리다 그 얼굴에 후우--하고 담배연기를 내뿜는 준식.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래는 캘룩거림. "대사가 아주 절절해? 지금 뭐 연애 하냐 너네?" 그래를 내려다보며 풉 웃는 준식.


"야 이 멍청아. 쟤는 손님이야. 와서 지 맘에 들면 그냥 골라서 하룻밤 보내는 그런 애라고. 너한테만 특별히 대해줄 줄 알았니? 내가 저 치랑 몇 년을 알고 지냈는줄 알아? 2년이야, 2년." 준식의 말은 사실 구구절절 맞았음. 고개를 떨구는 그래.


"어제 나으리 한 명 잡숫고도 배가 덜 불렀어? 요게 아주 욕심덩어리네, 보니까." 킥킥 웃는 준식. "야, 있는 손님이나 잘 챙겨라. 얼굴 믿고 까불다가 망할 수도 있으니까." 준식은 담배 끝으로 그래 어깨를 꾹꾹 찌르고 하하하! 웃으면서 사라짐.


고개숙인 그래 옆에서 한숨을 쉬는 동식. 준식의 말은 가시돋치긴 해도 다 맞는 말이었음. 어제 천 대사헌을 받은 주제에 아침이 되자마자 다른 기생과 밤을 지샌 한 도사를 힐난하다니. 기생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주제넘은 행동이었음.


"장그래, 어린애 아니잖아? 그치?" 동식은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 한숨 한번 쉬고 이정도로 그쳤음. "그나저나 어제 나으린 잘 모셨어?" 고개를 숙이고만 있던 그래가 다시 한 번 입을 힘들게 열었음. "그게...저...." "뭐야 대답이 이상하다?"


"나으리가..주무시고 계셔서.." "뭐? 그렇다고 너도 그냥 잔 거야?" "그게,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 결국 이마에 손을 탁 하고 얹는 동식. "아이고~ 죽겠다. 장그래 너 진짜..." 한편으로는 아직도 장그래가 '새 상품'이니 나쁘지 않기도.


끝내 장그래는 아침부터 동식에게 잔소리를 잔뜩 듣고 말았음. 게다가 장마철이라 그런지 오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우울한 그래의 마음은 더 우울해짐. 단 한 번 본 석율에게 그 이상의 친절과 관심을 기대했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나 그래는 감상에 빠져있을 사이도 없었음. 마루 끝에 앉아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보는 그래를 본 준식이, 어서 청승떨고 앉았냐고 재수없다고, 할 일 없으면 걸레질이라도 하라고 갈구는 바람에 결국 또 바닥에 엎드려 박박 걸레질을 해야 했음.


그 날 저녁은 비가 와서 그런지 한산하고 사람도 별로 없었음. 피크 시간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손님이 들지 않아 분위기가 쳐져있는 기생들. 그 때 예상치도 못한 놀라운 인물이 기방 대문으로 들어옴. 문을 열어준 종들도 좀 놀라는 눈치.


바로 어제 기방에 와서 밤을 지새고 갔었던, '높으신 나으리' 천관웅 대사헌이 따르는 종도 없이 홀 몸으로 불쑥 다시 찾아온 것. 깜짝 놀라 맨 발로 뛰어나가는 동식. "대사헌 나으리! 어서 오세요. 아이고 다 젖으셨네요! 수건 대령하겠습니다."


준식과 그래도 놀라는 눈치. 과연 관웅은 어제 자길 모셨던 두 기생, 준식과 그래 중 누굴 찾으러 온 것일까. "내 이 친구와 잠시 있게 해주게." 관웅이 가리킨 것은 장그래였음. 다시 한 번 빡이 오르는 준식. 아, 씨이발. 존심 상하네 이거?


준식이 이를 득득 갈며 장그래를 째려보는데 그래는 그런 준식의 시선을 느끼고 조금 움츠러들어 자신의 방으로 관웅을 안내함. 그래와 단 둘이 방에 앉게 된 관웅. 잠시 후 가벼운 주안상이 들어오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다 관웅이 먼저 입을 여는데.


"내 어제 너를 내버려둔 것이 마음에 걸려..." 그리고 품에서 뭔가를 뒤적거려 꺼내는데, 그것은 연고였음. "예쁜 얼굴을 어쩌다 다쳤느냐? 이걸 바르면 금세 나을 것이다." 그래는 깜짝 놀라 약을 받아들었음. 석율도 못 알아봤던 입술의 상처를.


그래는 약을 보자 갑자기 지금까지의 설움이 북받쳐 왈칵 하고 눈물이 차오름. 눈가가 점점 벌개지는 느낌에 스스로도 당혹스러운 그래. "아가야, 왜 우느냐?" 난데없이 울먹거리는 그래를 보고 당황한 관웅이 손가락으로 떨어지려는 그래의 눈물을 닦아줌.


그래는 나으리가 달래주자 더욱 설움에 북받쳐 눈물을 닭똥처럼 후두둑 흘리기 시작했음. 어깨를 움츠리고 눈물을 꾹 참으려 하지만 그게 되질 않아 결국 눈을 꼭 감고 우는 그래. 어쩔 줄 모르던 관웅은 결국 말없이 그래를 꼭 안아줌.


한참을 관웅의 품에 안겨있던 그래는 눈물을 다 그치고 나서야 내가 지금 무슨 응석을,하고 몸을 관웅에게서 뗌. 관웅은 억지로 붙잡지 않고 그래를 놔주었음. 관웅은 그래의 얼굴을 좀 보다가, 그래의 손등을 붙잡아 연고 뚜껑을 열고 자신의 손가락에 바름.


"자, 상처를 좀 보자꾸나." 상냥한 말투로 어르며 입가에 연고를 발라주는 관웅. 유난히 빨간 입술에 관웅의 기다란 손가락이 스치듯 닿아 간질간질. 그제서야 그래는 관웅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게 되었음. 어제는 최 영의정 접대하느라 정신없었고.


술먹고 뻗은 뒤 아침에 후닥닥 나갔기 때문에 뭐 제대로 얼굴 볼 시간도 없었던 것. 그런데,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얼굴은 한석율이라고 생각했던 그래였는데... 그래는 넋을 읽고 천 대사헌의 얼굴을 바라봄.


둥근 이마와 솟은 눈썹뼈, 움푹 들어간 눈매와 높고 큰 코. 네모난 턱까지 그래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음. 와, 이게 어른 남자구나. 한 도사와는 또 다른 느낌...정말 잘 생겼다, 게다가 기골도 장대하시고.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그래.


그러나 얼굴에 감탄하고 있기로는 관웅도 마찬가지였음. 어제부터 그 흰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거니와, 사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찌나 고운지. 게다가 나이도 너무 어려보여 왜 저런 아이가 기방에 있는 건가 의아했던 것.


그런데 어제 한 도사가 귀띔하기를 아직 처녀라 하고, 자기는 그저 쿨쿨 잠들었으니 이 어린아이 처지가 난처했을거라 생각이 미친 것. 물론 그래봤자 기생인데 다 씹을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입가의 상처와 더불어 그래 생각이 머리에 박혀있던 것.


그래서 직접 내의원에 방문해 잘 듣는다는 연고를 들고 갖다주러 이 비오는 날에 직접 기방에 온 것이었음. 약을 발라준 뒤 서로 말없이 쳐다보는 두 사람. "아까는 왜 울었느냐..?" 그래의 눈가에 조금 남아있는 물기를 엄지손으로 닦아준 관웅이 물음.


어떻게 어머니가 아프다, 기방에서 구박을 받는다 이런 말들을 할 수 있을까? 기방에 사연 없는 기생이 어디 있고, 막내가 갈굼 안 받는 기생집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는 "그냥..비가 와서요..."라고 대답하는데, 관웅도 더는 묻지 않고.


그저 그래에게 이렇게만 말하는 관웅. "내가 여기 더 있으면 너도 좀 더 쉴 수 있느냐?" 그래는 가만히 관웅을 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림. "그럼 너도 한 숨 붙이려무나. 나도 그럴 테니까." 순간 그래는 당황함. 이거 혹시...그건가?


긴가민가 하며 관웅 말대로 요를 까는 그래. 그러나 관웅은 그래를 건드리지 않고 요 위에 가만히 누워 그래를 손짓으로 부름. 머뭇머뭇 하면서도 관웅의 옆자리에 가 눕는 그래. "힘들 때 잠을 자면 좀 도움이 된단다." 눈가에 주름이 지도록 웃는 관웅.


그렇게 서로 마주보다가 관웅이 먼저 눈을 감고, 그래도 슬그머니 눈을 감음. 심신이 지쳐있던 그래는 금방 곯아떨어짐. 규칙적인 숨소리에 이어 도롱도롱 코고는 소리가 나자 감았던 눈을 뜨는 관웅. 그 때 밖에서 관웅을 찾아온 몸종의 소리가 들리고.


"나으리, 마님께서 찾고 계시옵니다." 관웅의 부인은 세도가의 여식이었음. 아버지의 위세를 등에 업고 관웅에게도 강한 소유욕을 드러냈음. 어차피 정략결혼이었기에 얼굴 볼일도 별로 없었지만 혼인전 애지중지 받들리며 살다 혼인후 관웅의 무관심을 못참음.


관웅은 한숨을 쉬고 그래가 깰까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남. 석율만큼이나 출세에 강한 야망을 갖고 있는 관웅에게 부인과의 관계는 끊기 힘든 것이었음. 관웅은 마지막으로 그래를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 동식에게 "아이를 깨우지 말게" 당부하고 돈을 쥐어줌.


그렇게 관웅은 가고, 그래가 계속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정도 훨씬 지난 깊은 밤, 갑자기 술취한 준식이 그래의 기방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옴. "야 이년아! 일어나,얼른." 난데없는 준식의 패악질이 시작된 것임.


깜짝 놀라 와르르 몰려나오는 기방 사람들. 준식은 술병을 한 손에 쥔 채 그래를 발로 차고 있었음. "이 앙큼한 년이, 한 서방만으론 성에 차지가 않던? 응? 높은분이 좀 귀여워 해주니까 뵈는 게 없지?" 준식은 본능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것.


그래는 암 말도 못하고 그냥 발길질을 당하고만 있고, 기방서 제일 잘나가는 준식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동식이 간신히 사람들 헤치고 나와서 "야 그만해 그만~! 애 잡겠다! 애 잡아!" 하면서 그래를 감싸 간신히 데리고 나옴.


관웅이 발라준 약이 무색하게 그래의 얼굴은 또 여기저기 상해 있었음. 일부러 얼굴을 집중적으로 때린 것 같다고 생각하는 동식. 그러나 동식도 준식을 말릴 수는 없었음. 일단 준식이 관리하는 손님이 기방의 50%를 넘었음. (캬 에이스~~)


그 날 아침이 올 때까지, 그래는 준식을 피해 기방 뒷쪽의 짐 놓는 골방에 앉아 관웅이 준 약통을 보며 훌쩍훌쩍 울었음.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또 어김없이 시작되는 고된 노동들과 준식의 구박...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음.


준식이 하도 난리를 쳤기 때문인지, 이제 손님이 와도 동식은 일부러 그래를 피해 지명을 넘겼음. 그래한테 좋은 손님을 주면 또 어떤 사단이 날지. 동식의 마음 속에 측은함이 있었음. 결국 한창 꽃이 피기 시작할 때인 그래는 기방 노비같은 존재로 전락.


그러던 어느날, 예고도 없이 한석율이 찾아옴. 매일 도장을 찍던 양반이 그동안 어쩌고 이렇게 간만에? 궁금하면서도 반갑게 맞아주는 동식. 준식 또한 흥! 하고 콧방귀를 끼는척 하지만 슬쩍 나와 한 도사를 맞아주고. 석율은 웃으면서 한 상 차려달라 함.


간만에 온 석율을 접대하는 것은 준식. 여전히 틱택거리지만 그래도 석율과는 2년간 미운 정이 든 것. 석율은 준식과 그간 업무로 바빴다느니 근황을 얘기하고는 "그런데, 그 아이는?"하고 물어옴. 듣자마자 그래 얘기인걸 눈치까는 준식.


"그 아이라니 누구 말씀이세요?" 모르는 척 하며 석율의 술잔을 채우는 준식. 석율은 "왜, 그 하얗고 빨간 아이 있지 않느냐. 입술이 도톰하고..." 막 생김새를 설명함. 그제서야 준식은 뚱하게 "아, 그 애요."하고 대답함.


"뭐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서 요즘은 허드렛일이나 시키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준식은 자기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완샷을 해버림. 나 앞에 두고 다른 애 얘기하지 말라 이거였음. 눈치빠른 한 도사는 "우리 자기 삐졌어?" 하고 어깨를 끌어안음.


"아 떨어져요, 더워 죽겠구만!" 짜증 팍팍 부리는 준식. "에이 오늘 술맛이 왜이래? 나으리, 술맛이 X같죠?" 바로 이런 맛(?)에 석율이 준식을 찾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더이상 그래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지만, 석율은 그래의 안부가 퍽 궁금해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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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웅그래/천그래] 불륜 임신 막장 썰② (트위터 백업 7/23)

ㄴ미생 기타 2015. 7. 23. 19:35

관웅은 허겁지겁 멜론을 사서 그래의 병상으로 와보지만, 그래는 이미 잠들어 있음. 허탈한 관웅. 내가 더 일찍 와서 먹이고 재웠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에 그래의 옆에 앉아 고개를 떨구는 관웅. 오늘 있었던 일 모두 자기 책임이었고, 그래는 자신의 우유부단 때문에 희생된 것이 분명했음. 이 어린애가 뭘 안다고 이런 몰골이 되도록 맞아야만 했을까? 관웅은 자신이 너무 미웠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부인이 쉽게 이혼해줄 것 같지 않았음. 이미 진흙탕에서 뒹굴게 되었는데 이제 장그래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그것이 문제였음. 그래의 배는 나온듯 아니나온듯 미묘했음. 관웅은 손을 가져가 그래의 배를 만져보았음. 아직 80여 일.

3개월, 늦어도 4개월 째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그래를 데리고 왔던 것이 생생했음. 도대체 난 무슨 생각으로 집을 얻어줬던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그래의 아이를 지울 생각따윈 없었던 게 아닐까. 자고있는 그래의 얼굴은 더욱 어려보였음.

그리고 그 순간, 그래가 눈을 반짝 하고 떴음. 그래는 엉망이 된 얼굴로 관웅을 불렀음. "과장님..." "그래야, 깼어?" 관웅은 황급히 의자를 끌어당김. 그래의 손을 꼬옥 잡아주는 관웅.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희미하게 웃는 그래.

"과장님, 좋은 냄새 나네요." "응?" "멜론 사오셨어요?" 그 와중에 그래는 귀신같이 과일 냄새를 맡은 것. 고급이라더니 숙성한 멜론의 향이 병실에 진동을 하고 있었음. "아,그래. 여기 있어. 지금 먹을래 그래야?" "...네에..."

그래가 대답하고도 조금 얼굴을 붉혔음. 아무래도 기어이 멜론을 먹어야만 이 욕망이 가라앉을 모양이었음. 'ㅂ` 관웅은 칼도 접시도 없다는 걸 생각해내고 이마를 탁 치더니, "잠시만 기다려 그래야."하고 다른 병실의 보호자에게서 빌려옴.

허둥거리는 관웅의 모습에 그래는 웃음이 나왔음. 그래는 깨어나 과일 향기를 맡은 뒤부터 이미 기분이 좋아져 있었음. 지금 관웅의 모습은 꽤나 새신랑, 혹은 아기아빠 같은 모습이었음. 관웅은 그릇 위에 멜론을 올려놓은 뒤 힘좋게 썩 하고 반으로 잘랐음.

그렇게 몇번 더 잘라낸 뒤, 먹기 좋게 칼집까지 내서 그래의 앞에 대령한 관웅. 물이 줄줄 흐르는 멜론에 그래의 입이 벌어졌음. "자, 그래야 아 해." 관웅은 포크로 하나를 집어 그래의 입 앞에 대령했음. 이런 낯부끄런 짓은 신혼 때도 안하던 것.

평소의 냉정하고 칼같은 천관웅 과장의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라, 그런 관웅을 바라보는 그래의 얼굴이 빨개질 정도였음. 그러나 관웅은 완전 아무렇지 않은 표정. "아 해봐, 그래야." 그래의 귀까지 빨갛게 익어버리고.

그래는 뜨거워지는 얼굴을 느끼며 입을 아 하고 벌렸음. 관웅이 통이 큰 것인지 멜론도 큼지막하게 썰어놔서, 힘껏 벌려야 받아먹을 수 있었음. 그래는 입가에 과즙을 묻힌 채 오물거리기 시작했음. 단맛이 한껏 입안으로 퍼졌음.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음.

"마...마이허요." 그래는 우물거리면서 명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대꾸했음. "응 뭐라고?" 관웅은 못들은 척 하면서 이미 하나를 더 집어 그래의 입 앞에 대령하고 있었음. 간신히 꿀꺽 첫 조각을 삼킨 그래는 다시 한 번 말했음. "맛있어요."

관웅이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웃었음. "맛있어? 그래의 머리를 한 손으로 슥슥 하고 쓰다듬는 관웅. "자, 또 먹어." 그래는 입을 앙 벌려서 또 하나를 받아먹었음. 달콤한 과즙이 입 구석구석 퍼져나갔음. "마이허요." "그래. 많이 먹어 그래야."

웃는 것 같던 그래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음. 멜론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그래. "...마잇어요." 불분명한 발음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돌려 관웅에게 웃어보이고. 그런데 왜 눈물이 그치지 않는지. 관웅의 가슴이 찌잉 하고 아파옴.

그대로 그래를 꽈악 끌어안아주는 관웅. 그래는 관웅의 팔에 매달려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음. "흑,으흑..." "그래야,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하다." 그렇게 그래는 한참을 관웅의 품 안에서 흐느꼈음. 셔츠가 젖어오는 것이 그대로 느껴짐.

관웅은 그래의 얼굴을 조심스레 돌려봄. 고집스럽게 관웅의 품 안에 얼굴을 묻으려는 그래. 그러나 관웅의 부드러운 손길에 결국 지고 맘. 얼굴을 돌리자 눈물 콧물로 엉망인 그래의 얼굴. 관웅은 쉬이-하면서 그래를 달래고 손으로 그래 콧물을 닦아냄.

그래는 당황해서 "더,더러워요" 하며 관웅이 만지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관웅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얼굴. 끝까지 그래 얼굴에 묻은 끈적한 타액을 손으로 훔쳐 근처 물수건에 닦아내고, 다시 한 번 새 물수건을 뽑아 그래 얼굴을 깨끗이 씻겨줌.

그야말로 둘 사이엔 가릴 것도 더러운 것도 없다는 그 행동에 그래는 몹시 부끄러우면서도 관웅의 다정함을 느낌.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따뜻해지는 그래. 관웅은 웃으면서 그래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맞춤. "...더 먹을래?" 한없이 다정한 그 눈빛.

"네, 더 먹을래요." 그래의 목소리엔 기운이 조금 돌아와 있었음. 작고 어리고, 강한 것 같으면서도 여린 아이. 관웅은 다시 한 번 이 아이 곁에는 자신이 있어줘야만 한다고 생각함. 그래는 이런 관웅의 마음을 아직은 몰랐지만, 곧 느끼게 될 것을.

그 날은 병실에서 지새고, 그래는 이틀 휴가를 냈음. 관웅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됨. 보다 안전하고 보안이 철통같은 곳으로.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지금같은 원룸이 아니라 점점 큰 집을 생각하게 되고.

마음같아선 빨리 부인과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래와 살고 싶었지만 쉽지 않은 길이 될 것 같았음. 관웅은 다시는 그래의 눈물을 보고싶지 않다고 강하게 마음을 다잡았음. 한편, 그래는 집에 있지 말라는 관웅의 말에 따라 휴가동안 호텔에 묵게 되었음.

관웅이 잡아준 호텔은 남산쪽에 있는 고급 호텔이었음. 이런 곳에서는 처음 묵어보는 그래. 자신의 본가는 허름한 달동네였고, 여행같은 것도 잘 다닐 기회가 없었음. 상처난 얼굴을 감추느라 후드 푹 뒤집어쓰고 관웅과 함께 체크인한 그래는 깜짝 놀람.

"저...과장님, 괜찮은 거에요?" "뭐가?" "숙박비가..." "넌 신경쓰지 마." 관웅은 웃으며 그래를 바라보고 벨맨의 안내를 받으며 룸으로 올라갔음. 그래가 자신의 크지도 않은 짐가방을 날라주는 벨맨을 보며 당황하자 관웅이 내버려두라고 함.

방은 꽤 사이즈가 있는 더블룸이었음. 위치 때문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경치도 매우 좋았음. 돈은 좀 들었지만 그래를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다는 관웅의 맘이 담겨있기도 했음. 그래는 처음 투숙하는 고급 호텔에 잔뜩 들떴음.

관웅은 통유리로 된 창가에 달라붙어 정신없이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그래를 보며 피식 웃고는 넥타이를 풀었음. 그 모습을 보던 그래의 귀가 빨개졌음. 눈치챈 관웅이 "왜?"하고 묻자, 그래는 고개를 푹 숙였다가 개미만한 목소리로 "멋있어서.."라고 함.

관웅은 피식 웃고는 나머지 옷을 마저 갈아입음. 편한 평상복 차림이 된 관웅. "내려가서 밥 먹자, 그래야." 관웅은 그래를 데리고 호텔 부페로 갔음. 그래는 신나서 이것저것 담아 양껏 먹음. 조그만 몸에 많이도 들어간다 생각하는 관웅.

둘은 후식까지 끝내고 다시 룸으로 돌아옴. 그래의 기분은 한결 나아진 것 같았음. "그래야, 상처 좀 보자." 관웅이 침대 위에 앉아 그래를 불렀음. 그래는 쪼르르 관웅이 부르는 대로 가서 관웅 옆에 앉음. 관웅은 조심스레 연고를 발라주었음.

간질거리는 관웅의 손길에 그래의 표정이 버라이어티해졌음. 눈썹뼈를 계속 실룩거리자 관웅이 웃으며 "얌전히 있어야지,"하고 타이르고. 관웅의 긴 손가락이 그래의 찢어진 입술가를 매만질 때는 그래의 기분이 약간 야릇해짐. 눈을 내리까는 그래.

관웅의 눈에 곱게 빠진 그래의 눈매, 그리고 촘촘한 속눈썹이 들어옴. 관웅은 저도 모르게 그래의 턱을 움켜쥐고 도톰한 아랫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봄. 그래는 이미 귀까지 빨개져 있었음. 그래의 속눈썹이 떨리는 것을 본 관웅은 고개를 기울여 입맞춤.

둘의 분위기가 미묘해졌음. 고개를 계속 기울인 채 그래의 눈을 마주보는 관웅. 그래는 잔뜩 빨개진 얼굴로 용기를 내서 관웅의 두 팔을 잡은 채 제가 먼저 입을 갖다 댐. 서툴기만 한 이것을 키스라고 불러야 하는가?

관웅은 입꼬리를 끌어당기고는 그대로 그래의 두 팔을 누르며 침대 위로 눕힘. 만세 자세로 관웅의 밑에 갇혀버린 그래. 관웅은 재빨리 그래의 입술에 다시 키스했음. 이번에는 아주 깊게. 그래도 기꺼이 입을 벌리고 관웅의 혀를 맞아줌.

두 사람의 다리가 점차 엉켜들었음. 관웅의 깊은 키스에 호흡곤란을 느낀 그래. 뒤로 느껴지는 푹신한 시트도 마음에 들었음. 입술을 뗀 관웅이 그래의 눈동자를 쏘아보며 자신이 입고있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푼 뒤 벗어버렸음.

가쁜 호흡을 내쉬며 관웅을 바라보고 있는 그래. 관웅은 곧 그래의 헐렁한 후드티도 벗겨버림. 아래에 드러나는 면티. 관웅이 웃으며 "많이도 껴입었네."라고 한마디 하자 그래의 얼굴이 새빨개짐. 관웅은 그대로 그래의 바지도 벗겨 침대 밑으로 던져버림.

나신이 된 그래를 감상하듯 위아래로 훑어보는 관웅. 그래는 관웅의 시선이 부끄러웠는지 "불 꺼주세요.."라고 조그맣게 항의하듯 말하고. 관웅은 태연하게 "왜? 난 더 보고싶어."라고 하며 빙긋 웃음. 관웅의 시선이 그래의 얼굴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고,

가슴에서 배로 내려오더니 한동안 가만히 보고만 있음. 아직 납작하게만 보이는 이 뱃속에 새 생명이, 내가 그래에게 만들어준 아기가. 관웅은 와이프가 임신했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묘한 기분을 느낌. 이 장그래가 대체 뭐길래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

그래도 뭔가 의미심장한 관웅의 시선을 느낌. 관웅으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뀐 건 그래도 마찬가지였음. 그래의 인생은 완전 급전환했음. 오메가인걸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발정기를 맞고 알파와 관계를 맺고.

단 한번의 관계로 뱃속에 생겨버린 새로운 생명. 직장 상사이자 가정과 아이가 있는 유부남에게 홀린듯이 빠져든 자신. 정말 예전의 그래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음. 말하자면 자신은 세상 모두가 돌을 던지는 '불륜'이란 것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그래에게는 이 사랑이 세상 전부였음. 관웅이라는 남자가 그래에게는 전부였음. 어쩌면 이 아기는 관웅을 붙잡기 위한 도구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음. 그만큼 그래는 사랑에 눈이 멀어 있었음. 그래는 몰랐지만 그것은 관웅도 마찬가지였음.

관웅이 부인이고 자식이고 모두 버리고 자신을 택하려 한다는 것을 그래는 전혀 몰랐음. 그래에겐 이 관계가 그저 위태한 짝사랑 같기만 했음. 때문에 관웅이 자신에게 잘해줄 때마다 오히려 그래는 불안했음. 그렇다고 이혼해달라고 할 수도 없었기에.

관웅은 그래의 옆구리를 붙잡고 말랑한 배에 입을 맞췄음. 그래의 얼굴이 확 붉어졌음. 그 때 관웅이 뜻밖의 말을 꺼냈음. "그래야, 우리 아기 낳자." 순간 놀란 그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음. 관웅은 곧은 시선으로 그래를 바라보고 있었음.

그래는 너무 놀라 더듬거리며 관웅에게 물었음. "나, 낳자고요? 아기를?" "그래." "하,하지만 과장님은," 그래가 침을 한 번 꿀꺽 삼켰음. "과장님은...부인도 아기도...있으시잖아요." "나 이혼할 거야." 연이은 충격에 그래의 입이 벌어짐.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래의 머릿속에 내용들이 정리돼 들어오기 시작. 자기로 인해 한 가정이 망가지고 파괴된다. 부인과 이혼한다는 건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 몰래 바라던 일이었음. 그러나 막상 그게 실현되는 건 상상해본 적 없었음.

게다가 아이는 또다른 문제였음. 그래가 알기로 관웅의 아이는 돌이 좀 지난 어린 아이였음. 그 아이까지 버린다는 이야기인가? 그럼, 나로 인해 그 부인과 아기 모두? 불행해지는 건가? 갑자기 이렇게 버림받고? 그래가 급격히 패닉에 빠졌음.

관웅은 그래의 흔들리는 눈빛을 눈치챘음. 이혼할거라 얘기하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의 반응은 뜻밖에었음. 그래는 물론, 여전히, 아이를 지우고 싶지 않았음. 원래 그래는 관웅을 향한 마음이 깊어졌던 순간 혼자 낳아 키울거라 마음먹었었음.

그래의 마음이 요동쳤음. 아냐. 내가 바랐던 건 이런게 아냐. 아니,바랐던 건가?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건가? 갑자기 버림받는다면, 나같아도 부인처럼 상대를 죽여버리고 싶었을 거야. 역시 내가 잘못한 거야, 내가 모든 불행의 근원이야.

진작에 지웠어야 해, 과장님에게도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괜히 욕심부려서 모두가 불행해....나 하나 때문에..... 그래의 어깨가 떨려오기 시작했음. 관웅은 재빨리 그래의 뺨에 손을 얹고 말했음. "장그래, 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그래가 떨리는 목소리로 관웅을 올려보며 말했음. "과,과장님...저어....돌아갈래요...." "무슨 소리야? 어디로?" "저...다시 집으로...본가로..." 관웅이 놀란 표정을 지었음. "왜그래 갑자기? 그래야," 그래의 어깨를 흔드는 관웅.

"도,돌아가야 돼요. 그래야 돼요." 그래는 갑자기 맨몸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포즈를 취함. 당황한 관웅이 그래의 팔을 붙들었음. "그래야 대체 왜그래," 뒤돌아본 그래의 눈이 젖어있었음. "제가,제가 다 잘못해서...그래서..."

그래는 제정신이 아닌듯했음. 그러나 그에 앞서, 관웅에게는 그래의 말이 자신을 떠나겠다는 선언으로 들려왔음. 관웅 또한 약간씩 흥분하고 있었음. "대체 그 몸으로 어딜 간다는 거야, 장그래," 관웅이 끌어당겼지만 그래 또한 완고했음.

"놔,놔주세요 과장님, 집으로...!" 결국 화가난 관웅이 그래를 홱 하고 끌어당겨 다시 침대 위로 짓눌러버림. 관웅의 두 팔 밑에 갇히게 된 그래. "넌 아무 데도 못 가, 장그래." 관웅은 대체 그래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음.

관웅 또한 이미 그래에게 빠질 대로 빠져 있었음. 어느 순간부턴가 급격히,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젊고 어린 그래의 순수한 마음보다 어른인 관웅의 이 마음은 훨씬 뜨겁고 한편으로는 음침한 것이었음.

이대로 그래의 손을 놓는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음. 그는 이미 부인과 양쪽 집안에 이혼을 선포했고, 관계는 파탄났음.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있는 것은 그래가 아니라 관웅이었음. 관웅은 자신의 모든 걸 버리고 이미 그래를 선택하고 있었음.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말이나 좀 해봐," 관웅이 추궁하자 그래는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이렇게 대답함. "저...때문에, 이혼하시면 안 돼요," 울먹거리는 목소리였음. "이혼하지 마세요." 관웅은 머리가 띵해졌음.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저만, 없어지면....흐윽," 기어이 그래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나왔음. 그러나 이미 관웅의 눈에는 뵈는 것이 없는 상태였음. "제가 없어져야 해요," 그래로서는 마지막 남은 양심을 쥐어짜는 것이었음. 그러나 관웅의 분노는 이미 찰 대로 차버리고.

"장그래, 뭐 하자는 거야." 비리게 웃는 관웅. "이제와 내숭이라도 떠는 거야?" 그래가 깜짝 놀라 눈물이 흐르던 눈을 크게 뜸. 관웅은 그래의 팔목을 붙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다시 말했음. "지금 와서 착한 척이라도 하고 싶어?"

관웅이 서슴없이 내뱉는 그래를 상처주는 말들에 그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관웅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음. "돌아가? 어디로. 집으로 가겠다고? 그럼 애초에 집에서 나오지 말았어야지. 내가 얻어준 집에 냉큼 들어와 놓고 이제와서 어쩌겠다고?"

자신의 분노때문에 미처 그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관웅은 해서는 안 될 말까지 그래에게 쏟아붓고 있었음. 모두가 그래가 자신을 떠나려고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음. "아니지, 그렇게 따지자면...아예 내게 말을 말았어야지?"

그래의 눈동자가 흔들림. "처음부터 아이를 가졌다는 말 따위 말았어야지, 어차피 제자리로 돌아갈 거였다면. 혼자 처리하겠다며? 그러지 않았었어?" 관웅의 말이 칼처럼 그래의 심장을 난도질하고 있었음. 그래도 관웅은 멈추지 않았음.

"왜 얘기한 거지? 왜 굳이 내 앞에서? 아이를 가졌다고, 알아서 없애겠다고?" 그래가 거기까지 듣다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반항했음. "놔요, 이거 놔줘요...!!" 관웅은 꼼짝도 하지 않았음. 그래는 심장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았음.

"나한테서 뭘 원한 거야, 장그래? 응? 대답해 봐, 솔직하게." "놔요, 놔요 이거..!!" 그래는 온 힘을 다해 관웅을 뿌리쳤음. 그 마른 몸 어디서 이런 힘이 솟았는지. 그래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음. "이제...됐어요. 다....끝이에요."

그래는 몸을 숙여 침대 밑에 떨어진 옷가지들을 주워들었음. 그래의 손이, 아니 온 몸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음. 그래가 목메인 소리로 말했음. "끝이라구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뺨이 불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래의 몸은 침대 끝에 처박혀 있었음.

그래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바로 깨닫지 못했음. 그저 번쩍거리는 눈 앞과 지독히 아픈 뺨을 감싸쥐고 침대에 처박혀 황망하게 관웅을 쳐다보고 있었음. 너무 세게 쳤는지 곧 그래의 코에서 붉은 피가 주룩 하고 흘러내렸음.

그래는 관웅이 자신을 때리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음. 너무 놀란 그래는 그저 자기 손바닥 위로 뚝뚝 떨어지는 코피를 바라보고만 있었음. 겁에 질린 것도 아니었고 그저 멍했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관웅이 분노에 눈이 멀어 그래를 내려봄.


"네가.....나한테........" 관웅의 한마디 한마디가 이로 씹는 것 같았음. 관웅의 눈동자에 붉은 핏줄이 잔뜩 서 있었음. ".....다시는 그딴 생각 하지 못하게 해주지." 관웅이 그렇게 말하고 그래의 맨 발목을 잡아 주루룩 끌어당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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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웅그래/천그래] 불륜 임신 막장 썰① (트위터 백업 7/14)

ㄴ미생 기타 2015. 7. 14. 17:48



오메가버스로 출장 같이 갔다가 그래 히트 터져서 고생하는거 관웅이 어떻게 처리해줬는데 덜컥 애 생겨서 그 이후부터 일어나는 일 보고싶다. 그래는 처음이었고 관웅은 본인의 테크닉(...으로 어떻게든 잘 처리해주는데 둘이 향기에 홀려 CD를 안 썻네그래!


그래서 일단 히트를 잘 달래준 뒤 담날 잘 씻겨주고 사심이 없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같이 사후피임약 사러 가자고 함. 히트를 이런식으로 맞은게 첨이라 아직 익숙하지 않은 그래.. 임신 위험 있으니 꼭 먹어야 해, 하고 관웅이 몇 번이나 말해주는데..


그래는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끼고 괜히 아직 밥을 안 먹었네 좀 이따 먹겠네 핑계를 대다가 기어이 약 먹는걸 까먹어버림. 그 다음 날 아차!하고 겁이 더럭 나서 약을 먹는데 띠로리~ 이미 그래의 뱃속에서는 수정란이 착상해서 분열을 하고있었으니...


암튼 관웅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음. 그는 애딸린 유부남이고 결혼생활도 딱히 좋지도 않지만 딱히 나쁘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로 적당히 유지가 되던 상황. 그래와는 히트때 도와줬고, 피임약 챙겨줬고, 사심 없는거 밝혔고, 다시 출장에서 백한 사이일 뿐.


그렇게 한 달 반쯤 지났는데 그래가 뭔가 이상함을 느낌. 그렇다. 안 온다....히트가 안 오는 것이었다!!! 그래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 혼자서 달달 떨며 병원에 감. 축! 임신입니다! 라는 의사의 말. 그래는 완전 턱이 빠져서 패닉 상태!


병원에서 나와서도 혼이 승천할 기세인 그래. 과장님인데, 유부남인데, 애도 있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 불륜 한거야. 유부남의 아기를 가져버렸어...!!! 머리가 터질것 같은 그래. 사실 그래가 관웅에게 별 맘이 없다면 별 문제도 되지 않겠으나


그래는 관웅이 자기 히트를 도와주던 그 날 이후 남몰래 관웅을 짝사랑하게 됐던 것. 몸을 준 뒤 마음을 줘버린 이런....ㅠㅠㅠ 암튼 그래는 덜덜 떨리는 떨리는 다리로 집에 돌아와 며칠동안 고민함. 관웅에게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떤 반응일까?


그래는 만약 아이를 낙태하더라도 관웅에게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함. 물론 알파가 그런걸 대수롭게 생각할 것 같지 않았고, 시키는대로 제때 피임약을 먹지 않았던 자신의 잘못도 있었으니. 그래는 엉뚱하게 왜 약을 늦게 먹었냐고 추궁당할까봐 걱정됨.


아무튼 결심한 그래는 관웅에게 가서 오늘 저녁 시간 되세요?라고 말함. 지금까지 그래가 이랬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관웅은 직감적으로 뭔가 있구나 하고 느낌. 그리고 OK. 탕비실이나 회의실이 아니라 저녁에 아예 밖으로 나가 카페에 자리잡는 둘.


그런데 그래가 좀처럼 말을 못하고, 아래만 내려다보며 커피잔만 꼭 쥐고 손을 달달달 떨고 있는 것. 관웅은 그래가 걱정스러워서 왜그래 장그래, 하고 그래의 손을 잡음. 그래가 간신히 용기내 고개를 들어올리는데 이미 눈물이 떨어질 듯 고여있음.


장그래가 처음 꺼낸 말 "과..과장님, 정말 죄송합니다"였음. 무슨 일인지 점점 걱정되는 관웅. 걱정하지 말고 말해보라고 부드럽게 회유하는데 기어이 장그래 눈에서 눈물이 문자 그대로 후두두둑 떨어짐. 작은 몸을 웅크리고 떨면서 우는 그래.


한참동안 관웅의 토닥임을 받고 나서야 말을 꺼내는 그래. "절대 과장님에게 누를 끼치려는게 아닙니다. 그것만 알아주세요. 다 제가 알아서 할 거니까..." 관웅 더욱 답답. "이,임신했어요. 저 임신했는데...과장님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관웅은 갑자기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음. 지금 이게 무슨 소리지? 분명 그 때 사후피임약도 챙겨줬을 텐데...? 장그래는 간신히 쥐어짜는 목소리로 끝까지 말함. "낳고싶다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았어요."


관웅 또한 말이 잘 안나오는데 그래가 마지막 결정타를 날림. "병원도 제가 알아서 찾을게요.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조용히 잘 처리하겠습니다..." 관웅은 그제서야 그래가 낙태하겠다는 소릴 한다는 걸 깨달음. 충격이 연타로 온 관웅.


그래는 할 말 다 했으니 고개 숙이고 조용히 앉아있고, 관웅은 그 앞에서 입 주변을 쓰다듬으며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고. 한참이나 말없이 그렇게 있던 두 사람. 드디어 관웅이 말을 꺼내길 "그래 씨는...이미 다 결정한 건가?"


장그래가 그 말에 얼굴을 드는데 안 그래도 어려보이는 얼굴이 온통 눈물 범벅으로 처량하기 그지 없음. 게다가 관웅이 어떤 말을 꺼낼지 몰라 눈동자는 겁에 질려 있음. 장그래가 "네?"하고 반문하자 관웅은 "그래 씨는 혼자서 그렇게 다 결정한 거야?"


그래가 이 말이 추궁인지 단순한 질문인지 생각하는 사이 관웅은 "나한테도 책임이 있어. 그러니까 이렇게 알린 거겠지? 피임약이라고 100%는 아니니까...게다가 사후이고...그래 씨 혼자서 다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래 눈이 점점 휘둥그래짐.


관웅은 그래가 설마 피임약을 안 먹었다곤 생각하지 않았음. 왜냐 자기는 애딸린 유부남이고, 나이도 많고, 장그래가 자신의 아이를 원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 (그가 매력적인 알파이긴 하지만) 때문에 둘 다 피임의 확률의 덫에 걸렸을 뿐이라 믿음.


"그래 씨, 이렇게 하자. 이건 그래 씨만의 일이 아냐. 우선 조금 천천히 생각해 보자. 알겠지? 내가 회사 가까운 데 방을 하나 얻을 테니까, 당분간 거기서 지내면서..." 그래는 이게 뭔 소린가 하고 못 알아듣고 있음. 뜻밖의 곳으로 일이 튀고있음


관웅은 최소한 나이든 성인으로서, 알파로서, 그 외 여러 면으로 그래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음. 어린 아이(?)를 임신시켰으면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했음. 물론 이 일은 관웅에게도 쇼크였음. 사실 관웅도 어떻게 할지 고민중이었음.


어쨌든 그렇게 해서, 관웅의 부인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그래는 관웅이 얻어준 원룸에서 지내게 됨. 그래는 사실 아이를 지우고 싶지 않았음. 그러나 이 일의 끝은 결국 뻔했음. 가정이 있는 관웅을 두고 애를 계속 뱃속에 키울 순 없는 노릇.


암튼 그래서, 관웅과 그래가 방법을 찾을 때까지(혹은 결심을 할 때까지) 원룸에서 은밀한 동거를 시작하는 두 사람인데....


동거라고는 했지만 관웅도 가정이 있고, 그래도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둘이 함께 사는 것은 아니었음. 그래야 회사에서 가까우니 자주 원룸에서 잠을 잤지만 관웅은 하루~이틀 정도를 제외하면 집에 들어가야 했음. 아무튼, 그래는 기분이 묘했음.


자기 뱃속에 아기가 생겼다는 것도 묘하고 관웅이 자신이 지낼 집을 얻어줬다는 것도 묘했음. 솔직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관웅의 말을 따르기로 했음. 관웅과 함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지만.


어느새 아기를 가진지 2달 가까이 되었고 그래는 본격적으로 입덧이 시작됨. 몸은 당연히 항상 피곤한 듯 했고 잠도 한결 많아졌음. 암 것도 모르는 오차장은 그래한테 정신좀 차리라고 큰소리 치고, 그럴 때면 벌떡 관웅이 일어나서 쉴드 쳐주고.


왜 이렇게 단 것이 땡기는지 그래 서랍 속은 안그래도 간식 많았었는데 이제는 완전 한가득. 오죽하면 오차장이 "그만 먹어라 배 나온다"라는 쪽지를 넣어둠. 아무튼 그래는 이런 몸의 변화를 겪으며 아 이래서 회사 근처에서 지내라고 하신 거구나, 생각.


그런데 한창 많이 먹는다 싶더니 드디어 무시무시한 마수가. 어느 날 영업3팀 사내식당에서 밥 먹는데 메뉴가 짜장면이었음. 그래가 좋아하는 거. 근데 순간 웁 하고 입을 막더니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나감. 당연히 관웅이 벌떡 일어나서 쫓아가고.


그래는 정신없이 화장실 찾아들어가서 양변기 열고 막 게워냄. 관웅은 예전에 마눌이 하는걸 다 봤기 때문에 익숙(...) 장그래, 괜찮아? 하면서 문 열고 들어와 그래 등 살살 쓸어내려줌. 그래는 괜찮다고는 했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음.


그래가 처음 입덧하는 것을 본 관웅은 야근을 마친 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래에게 얻어준 원룸으로 가는데, 그래가 침대에 누워서 이불 덮고 끙끙대고 있음. 당황해서 재빨리 가보니 밥은 먹고 싶고 토하긴 계속 토해서 탈진이 된 것.


앳된 얼굴로 앓는 그래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옆에서 계속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관웅. 그래는 관웅의 손이 참 크고 따뜻하다고 느낌. 한창 쓰다듬 받던 그래가 저도 모르게 "오늘 자고 가심 안돼요?"라고 함. 관웅의 눈이 커짐. "그래, 알았어."


관웅은 그래를 위해 죽을 끓이기 시작함. 그래는 누워서 요리하는 관웅의 너른 등을 바라봄. 가슴이 설레는 그래. 관웅이 직접 떠주는 죽이라 그런지 조금 넘기는 것 같음. 그러나 많이는 못먹고 결국 구역질 하는 그래. 관웅은 누워서 자라고 머리를 만져줌


그 때 그래가 과감하게 한마디 더 함. "옆에 같이 누워주시면 안돼요?" 관웅은 또 조금 놀라는 것 같았으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로 들어옴. 그래랑 관웅이 마주한 포즈가 돼서 그래는 괜히 두근두근. 좀 더 용기를 내서 한마디 더 하는 그래.


"저...안아 주시면 안돼요?" 그러자 관웅은 말없이 자기를 마주보고 있는 그래의 몸을 끌어당겨 꼬옥 안아줌. 그래의 머리가 관웅의 가슴에 파묻힘. 쿵 쿵 하고 관웅의 심장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그래. 저도 모르게 관웅의 셔츠를 꽉 잡아 쥐는데.


어쩐지 관웅의 넓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눈물이 차오르는 그래. 이 따뜻한 품도 결국 내 것이 아닌거지, 집에서 기다리는 관웅의 부인과 아이의 것인 거겠지...하고 기어이 말없이 관웅의 셔츠 앞을 적셔가는 그래. 관웅은 깜짝 놀라 그래야? 하고.


왜 울어 그래야. 어디 아퍼? 많이 아프니? 하고 다정하게 묻는데, 그게 더 서러워서 그래는 아,아니에요- 하면서도 바보같이 결국 눈을 감고 관웅 앞에서 울어버리고 맘. 관웅이 왜 그래 그래야, 왜 울어...하면서 가슴에 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한편 우는 그래를 보는 관웅의 맘도 복잡함.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자기도 책임을 지겠다고 그래에게 집을 얻어주긴 했는데, 아이를 지우려면 배가 나오기 전에 지워야 함. 사실 둘에겐 시간이 많이 없음. 입덧을 이제 막 시작한 그래의 우는 모습이라니.


품에 안은 그래는 조그맣고 따뜻했음. 히트를 달래주는데 급했던 예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사실. 그래의 머리칼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음.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관웅. 그래의 눈물로 척척해진 셔츠를 느끼자 왠지 그쪽이 쿡쿡 쑤시는 것도 같음.


눈물로 잔뜩 젖은 그래가 관웅에게 마지막으로 하나 더 부탁했음. "키스...해주시면 안돼요...?"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었음. 관웅은 조심스럽게 그래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숙임. 그래는 젖은 눈으로 관웅의 눈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눈을 감음.


이 아이의 눈매가 이렇게 야했던가. 관웅은 그래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생각함. 이 아이의 입술이 이렇게 빨갛고 도톰했던가. 입술을 바라보며 생각함. 손가락으로 턱을 조금 눌러 입술을 약간 연 다음 관웅은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그 위로 가져감.


아주 천천히 그래의 입술을 빨아들이는 관웅. 아랫 입술 한 번, 윗 입술 한 번, 그리고 살짝 입맞춤. 츄 하는 젖은 소리가 둘의 입술 사이에 맴돌음. 관웅의 입술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그래가 관웅의 입술로 다가감. 눈을 감은채 떨면서 관웅에게 키스.


순간 관웅의 마음 속에 그래를 향한 애틋함, 사랑, 연민 등과 함께 욕정까지 함께 폭발함. 관웅은 재빨리 키스하며 그래의 몸 위로 올라타고, 그래는 다리를 벌려 기꺼이 관웅이 자기 위에 자리잡도록 해줌. 그래는 떨면서 관웅에게 고백함. "사랑해요."


관웅은 머리 뒤부터 찌르르 전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낌. 마법처럼 그래가 사랑을 고백한 그 순간부터 관웅도 그래를 사랑하게 된 것임. 관웅은 아무 말 없이 그래에게 짙게 키스함. 그리고 그날 밤 뜨겁게 서로를 안는 두 사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결국 관웅은 연락하지 않고 외박을 해버림. 이런 일은 처음이었음. 그러나 관웅은 지난 밤 덕분에 자기 안에 아직 이런 격정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깨달음. 결혼 n년차만에. 자신의 아기를 가진 어린 오메가에게서. 잠든 그래를 보며 마음이 복잡한 관웅.


순간 그래가 눈을 뜸. 창에서 쏟아지는 햇빛에 반사된 그래의 눈은 아주 맑고 밝은, 투명한 갈색이었음. 그래는 아직도 찌릿거리는 몸을 느끼곤 베개를 꽉 끌어안은 채 관웅을 바라보며 수줍은 미소를 지음. 관웅은 그런 그래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낌.


"잘 잤어?"라고 묻자 얼굴을 붉히며 끄덕거리는 그래. 관웅은 허리를 숙여 그래의 머리칼을 걷어내고 예쁜 이마에 키스해줌. 얼굴을 더 붉히는 그래. 관웅은 그래를 마주보다 입술에 촉 하고 키스해줌. 두 사람 시선 얽히고, 이번엔 깊은 키스가 시작됨.


그대로 아침에 한번 더 일을 치루는 두 사람. 관웅의 마음이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자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음. 그래의 사랑과는 달리 나이가 든 관웅의 사랑은 훨씬 깊은 것이었음. 마치 뜨거운 용암 같았음. 그래는 관웅이 주는 쾌락 아래 녹아내릴 뿐.


그 날부터, 관웅은 부쩍 그래와 같이 있는 날이 많아졌음. 관웅은 그래와 있을 때는 일체 와이프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 그러나 그래의 맘 속 한 구석에는 계속 '나는 불륜 상대이다' '과장님 부인에게 죄를 짓고 있다' 라는 마음이.


관웅은 정말 그래에게 지극정성이었음. 그래를 사랑하게 되자 관웅은 마치 눈이 멀은 사람 같았음. 하지만 그래는 늘 관웅에게 조심스러웠음. '임자 있는 사람'이기 때문. 그리고 그래는 관웅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몰랐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래는 관웅이 오직 죄책감 때문에 자신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하고 있었음. 언젠가는 결국 이 아이를 떼어야 할 것. 결론은 정해져 있고, 자기도 처음부터 관웅에게 그렇게 말했고. 그래는 관웅의 친절과 애정이 모두 죄책감에서 비롯된 거라고 스스로 믿음.


때문에 그래는 관웅에게 입덧의 고통이나 불편한 몸을 잘 티를 내지 않았음. 밥을 먹지 못하는 그래는 날이 갈수록 말라갔음. 관웅은 너무 안타까워 온 동네를 뒤져 그래를 위한 보양식을 공수해옴. 그래는 그저 관웅이 자신의 옆에 있어주는 것이 좋았음.


하지만 그래도 맘 속으로 관웅이 걱정되었음. 관웅은 이제 거의 일주일에 3~4일을 그래와 함께 있었음. 아무리 부인 얘기를 금기시하는 그래지만 이정도가 되자 관웅이 걱정되었음. 그럼 관웅의 집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었냐고? 당연히 태풍의 눈이었음.


관웅은 와이프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 그렇기에 진작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고백하였음. 그 사람이 아기를 가진것까지. 재산과 양육권을 모두 내어줄테니, 아니 아기는 자신이 맡아도 되니 갈라서자고 말함.


당연히 부인 입장에서는 날벼락, 양쪽 집안은 뒤집어졌음. 관웅의 집안은 우성알파답게 훌륭했고 부인도 알파였음. 사랑으로 한 결혼은 아니었지만 부인은 쇼크받음. 무엇보다 관웅이 너무 완강했음. 난 널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결혼을 유지할 수 없다.


관웅은 재산따위엔 미련이 없었음. 아이도 원하면 데려가고, 만약 새출발에 방해가 된다면 자신이 맡겠다는 것이었음. 이런 결혼을 어거지로 유지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모두가 고통받을 것임을 분명히 밝힘. 관웅의 부모에게도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음.


무언가를 이토록 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이정도는 아니었음. 관웅은 마치 눈이 먼 것처럼 보였음. 부인은 결국 너무 뻔뻔한 관웅에게 분노하게 됨. 심부름센터 사람들에게 바람 상대에 대한 뒷조사를 의뢰하는 부인. 도대체 어떤 년인지 보자.


근데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가지고 온 정보는 너무 충격적인 것이었음. 이미 둘이 방을 얻어 거의 반 동거하고 있다는 것도 그랬으며, 그 상대가 너무 앳돼보이는 남자애라는 것도 충격이었음. 심지어 같은 직장의 부하라는 부분에서는 손이 부들부들.


부인 또한 관웅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음. 가문 보고 결혼했고, 결혼했으니 애를 낳았고 결혼생활을 이어갔던 것이었음. 그러나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였음. 저런 어린 오메가 따위 때문에 내 완벽한 결혼생활이 망가지다니. 결국 부인은 그래를 만나보기로 함.


한편 그래는 전혀 모르게 관웅 쪽에서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동안, 그래의 토하는 입덧은 차차 멈추어가고 이제는 먹는 입덧쪽으로 방향이 바뀜. 그러나 워낙 관웅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내색하지 않는 그래는 차마 다른 사람들처럼 사달라는 얘길 못함.


하루는 관웅이 그래와 있지 않고 집으로 들어간 날이었음. 그런데 그 날은 정말로, 정말로, 정말정말로 참을 수가 없었음. 눈물나게 멜론이 먹고 싶었음. 평소에는 사먹어본 적도 없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던 과일인데 진짜 그게 먹고싶었음.


그래는 먹는 입덧이 시작됐어도 단 한번도 관웅에게 뭔가 사다달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음. 관웅에게 그런 얘기까지 하는 건 너무 어리광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음. 그래는 신발을 신고 새벽 2시에 편의점을 헤맴. 그러나 멜론이 있는 곳은 없었음 ㅠㅠ


결국 생과일 대신 메로나나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발을 헛디뎌 앞으로 거하게 넘어져서 무릎이 확 까져버림. 당연히 아이스크림도 날아감. 서러움이 몰려오는 그래. 아픈 몸 추스리고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한참 혼자 울다가 집으로 들어가서 잠.


다음날 회사에서 그래를 본 관웅은 절뚝거리는 모습 보고 깜놀해 무슨 일이냐고 붙들고 물어봄. 그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걍 좀 넘어진 거라고 극구 고개를 흔듬. 그러나 그래 마음 속으로는 자기도 진짜 신부처럼 관웅에게 어리광을 맘껏 부리고 싶었음.


그 날 하루종일 그래는 망설임. 관웅에게 멜론을 사달라고 할까 말까. 사달라고 하면 관웅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괜히 고민도 많을 텐데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닐까. 차마 사달라는 말은 못하고 대신 "오늘 집에 오시나요?"하고 소심하게 물어보는 그래.


"외부에 일이 있어 좀 늦게 들어갈 거야. 왜?" "아,아니에요." 그냥 슬쩍 한발 빼는 그래. 관웅이 집에 와주는 것만으로도 기쁘기 때문에. 그러나 이 날 사단이 일어나고 마니... 그래는 퇴근하고 원룸으로 와 관웅을 기다리고 있었음.


그리고 벨소리가 남. 그래는 관웅이 자기 때문에 일찍 온 줄 알고 기뻐서 화색이 도는 얼굴로 "어서오세...!"하고 문을 왈칵 열어버림. 그러나 문 밖에 있던 것은 두둥. 바로 관웅의 마누라였음. 그것도 뒤에 남자 둘을 끼고. 새파랗게 질린 그래.


관웅 부인은 신발도 벗지 않고 둘이 사는 원룸으로 들어와 하나하나 둘러보며 아주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음. "아주 놀구들 있구나. 소꿉놀이인줄 알아 이게...?" 몇개 있지도 않은 살림살이를 막 뒤집으며 분노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비웃는 부인.


마지막으로 그래의 앞에 서는 부인. 심지어 부인이 그래보다 키도 조금 큰 것 같음. 사복으로 갈아입어 더욱 어려보이는 그래. "니가 그 오메가야?" "아...저..." 그래는 관웅의 본처라는것을 바로 깨닫고 온 몸에 싸아아 소름이 돋고 말문이 막힘.


"너같은 천한 년이 내 서방 앞에서 다리 벌리고 꼬셔낸 거야?" 사정없이 그래를 몰아붙이는 부인. "그래서 남의 가정 망가트리니까 아주 신이 나디?" 부인의 눈에서 불꽃이 이글이글. "애까지 가졌다며? 남의 서방 돈 많은건 알아가지고."


순간 쨕!!!하고 그래의 뺨을 올려붙이는 부인. 그래는 고개가 홱 돌아갈 정도로 세게 맞음. 뺨에는 바로 뻘건 손자국 남음. "어디 오늘 너 죽고 나 죽어 보자." 곧바로 부인은 그래의 배를 발로 차고 바닥에 쓰러진 그래의 머리채를 잡음.


그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함. 부인의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해서 그저 때리는 대로 맞고만 있음. 부인은 그래 뱃속의 애를 없애버리기로 작정한 듯 대놓고 배만 짓이기려고 함. 그래는 본능적으로 배를 꼭 끌어안고 웅크림. 그 꼴을 보고 더 빡치는 부인.


"야 이 X같은 년아! 남의 서방 꼬셔서 살림 차리니까 좋아? 응? 좋냐고! 이 앙큼한 년아!" 교양있게 살아왔던 부인은 완전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음. 나이도 자기보다 훨씬 어리고 얼굴도 이쁘장한데, 천한 오메가. 그래를 향한 분노가 하늘을 찌름.


결국 부인 속 풀릴 때까지 구둣발에 짓밟힌 그래는 완전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됨. 코피도 흐르고 입도 찢어지고 사람의 몰골이 아님. 부인은 머리칼 흐트러진 채로 씩씩대더니 "너 알아서 그 애 지워. 안그러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하고 남자들과 퇴장.


그래는 너무 아파서 웅크린 채로 꼼짝도 하지 못함. 그러다가 결국 쓰러져서 기절하고 맘. 밤늦게 들어온 관웅은 집에 불이 다 꺼진걸 이상하게 생각. 거실 등을 켰더니 난리난 집안과 거실 한가운데 피흘린채 쓰러진 그래. 관웅 깜짝 놀라서 그래를 안아듬.


그대로 차를 몰고 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관웅. 그 와중에 갑자기 신음을 흘리며 하혈을 시작하는 그래. 관웅은 더욱 속도를 내어 병원으로 가고, 그래는 이동침대에 뉘여져 곧바로 안으로 사라지는데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은 관웅. 그러나 슬슬 감이 오고.


부인에게 전화를 거는 관웅. 몇 번 벨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쌔한 목소리로 바로 받는 부인. "너...네가 한 거야?" "그러면 어쩔 건데?" "너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누가 할 말을 하고 있어? 가만히 있다가 똥 맞은게 누군데?"


분노로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관웅. 아마 관웅이 현장에 있었다면 부인 얼굴을 한 대 쳤을지도. "니 새끼 두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새끼 싸고도는게 그렇게 좋든? 내가 순순히 이혼해줄거라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야. 내가 받은 상처만큼 너도 받아야 돼."


관웅은 말없이 통화종료 버튼을 누름. 이제 밑바닥 시궁창에서 구르는 일만 남은 것임. 아니, 이미 구르고 있었음. 그것도 죄 없는 그래가. 응당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을. 하혈하던 그래의 모습이 생각남. 관웅은 제발 그래와 아기가 무사하기만을 비는데.


그래가 검사실서 나옴. 관웅에게 설명하는 의사. 다행히 골절은 없고, 전신 타박상에, 충격으로 인한 출혈이 있긴 했지만 아기는 무사. 환자가 많이 놀랐으니 당분간 절대 안정 필요. 관웅은 유령같은 표정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그래에게 다가감.


옆에 앉아 상처가 많이 난 그래의 얼굴을 애틋하게 어루만지는데 그래가 힘겹게 눈을 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온 힘을 다해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래. 관웅의 눈가에 괴로움이 한가득. "그래야, 미안하다.....정말 미안하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제가 죄송해요..." "네가 뭐가." "제가..과장님 가정을 깨서..다 제가 욕심 부렸기 때문이에요...죄송해요..." 그래의 바보같을 정도의 착한 마음씨에 울고 싶은 관웅. "제가 과장님 맘대로 좋아해서...죄송해요..."


"그래야, 그런 말이 어딨어. 내가 미안해. 모두 내가 미안해...." 그래의 손을 꼭 붙들고 이마에 가져다대는 관웅. 고통에 미간이 구겨져 있고 목소리는 떨리는데. 둘이 한참 말이 없이 그대로 눈물만 흘리고...그러다 조용히 말을 꺼내는 그래.


"과장님, 그러면...미안하면...저 소원 하나 들어주실래요?" "무슨 소원이든 다 말해, 그래야." 고개를 들어 그래를 보는 관웅. "저.....전부터 멜론이 먹고 싶었는데....사다주시면 안 돼요?" 관웅은 그런 그래를 보고 한참만에 대답하는데.


"그럼, 그래야. 사다주고 말고. 멜론 먹고 싶었어? 왜 그걸 이제 말해..." 관웅은 그제서야 그래가 항상 자기 앞에서 말을 아끼고 참던 것을 기억해 냄. 분명 먹는 입덧이라 먹고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그럼 꼭 사다주세요." 슬프게 웃는 그래.


관웅은 그래가 잠들 때까지 지켜봐주고 저녁에 혼자 병실을 나가 병원 바깥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빡빡 피움. 그리고 그래 깨기 전에 차 몰고 재빨리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로 가서 최상급 멜론을 사갖고 다시 돌아오시는 우리 과장님...!!


(썰은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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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율그래/관웅그래/그래른] 먹이사슬 #35 '태' (2)

ㄴ미생 "먹이사슬" 2015. 6. 28. 21:54





간헐적으로 몸을 떠는 그래는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식은땀이 잔뜩 흘러나와 옷은 온통 젖어있었다. 와이셔츠 차림인 그래는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얬다. 그래도 익숙한 알파향에 어떻게든 그 쪽으로 움직이려 하는 모습을 보자 석율의 마음 속에 애처로움이 더해진다. 이 순간에도 그래는 예뻤다. 석율은 그 옆에 누워 그래의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그래는 아기처럼 석율의 품으로 파고들려고 했다. 


석율은 잠시 행동을 멈추고, 자신의 가슴에 묻힌 그래의 머리칼 향기를 맡았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나 땀을 흘리는데, 땀냄새마저 나지 않았다. 철저한 무향. 그래 특유의 오메가 향은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석율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는 완전 무의식 상태에서 행동하고 있었다. 가끔씩 경련하는 그 몸이 석율을 향해 몸을 파묻은 후,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여 상대를 좀 더, 좀 더 가까이 끌어당기고자 했다. 그러나 석율의 맨 가슴 위에서는 그래의 손이 자꾸 미끄러질 뿐이었다. 그래는 눈을 꼭 감은 채 손을 위로 움직여 석율의 목을 감기 시작했다. 희고 가는 손가락이 덩쿨처럼 석율의 목을 둘렀다. 석율은 그런 그래의 머리에 키스했다. 젖었지만 부드러운 머리칼이었다. 


석율은 슬슬 손을 들어 그래의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등에서부터 쓸어내려 부드러운 히프를 꽉 쥐고 끌어당긴다. 둘의 몸이 착 붙게되자 이번엔 다시 허벅지까지 쓸어내린다. 애틋하면서도 성적인 손길이었다. 석율은 슬금슬금 그래의 두 다리 사이로 자신의 다리를 끼워넣었다. 그래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다리를 꽉 조였다. 석율은 단단한 허벅지로 그래의 아래쪽을 꾹꾹 누르며 자극했다. 석율의 페니스는 이미 발기해 있었다.


방 안이 석율의 알파향으로 꽉 찼다. 그랬다. 석율에게는 오메가의 향이 필요 없었다. 석율에게는 오직, 장그래라는 이유로 충분했다. 장그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욕정할 수 있었다. 장그래이기 때문에 석율은 애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 아닌가. 육체의 끌림이 아닌, 사랑으로 자신을 안아주는 것. 바로 그 소원을 지금 석율이 들어주려고 하는데, 정작 주인공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의식을 잃고 있다. 


석율은 이 모든게 그저 미리 정해져 있던 것만 같았다. 일명 '운명의 장난'이라는 것 말이다. 


처음으로 석율이 사랑으로 그래를 안으려 하는데 그래는 그 사실을 모른다. 전혀.







[먹이사슬 #35 '태' (2)]







석율은 옷을 다 벗은 뒤 의식이 없는 그래를 똑바로 눕히고, 재빨리 두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래는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다리를 벌려 석율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석율의 목을 붙잡은 흰 손도 그대로였다. 눈을 감은 채 식은땀을 송글송글 흘리고 있는 그래였다. 석율은 상체를 숙여 그래의 이마와 두 눈두덩에 키스해 주었다.



"그래야, 사랑해."



석율은 조용히 그래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그래는 석율의 고백을 듣지 못한다. 석율의 눈이 묘하게 슬퍼보였다. 석율은 그래의 벨트를 풀고, 지퍼를 내린 뒤 속옷과 같이 조심히 끌어당겼다. 무릎 근처까지 끌어내린 뒤에는 자신의 발로 한꺼번에 잡아 침대 밖으로 밀어 던져버렸다. 그래의 셔츠는 쉽게 벗길 수 있었다. 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차갑기까지 했다. 침대 아래로 셔츠가 툭 하고 떨어졌다.


석율은 그래의 양 볼을 잡고 고개를 기울여 통통한 입술에 키스하였다. 그래의 예쁜 입술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촉 하고 석율의 입술이 떨어지자, 그래가 입술을 조금 벌렸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의 입에서 달콤한 숨이 흘러 나왔을 것이다. 석율은 주저하지 않고 그래의 입 안으로 자신의 혀를 밀어넣었다. 그래의 입 안이 말라있었다. 석율은 느릿하게 그래의 혀를 빨고, 입 안을 더듬으며 그래의 입 안을 적셔주었다. 


석율이 인내심을 가지고 공을 들이자 그래의 입 안이 금세 젖어들었다. 석율이 고개를 떼자 두 사람의 입에 침이 늘어졌다 떨어졌다. 그래의 입술 옆쪽으로 타액이 묻어 흘러내렸다. 석율은 손가락을 내밀어 그것을 닦아주었다. 석율의 미간이 살짝 떨렸다. 그는 지금 그의 인생에서 아주 크게 방향을 바꿀 지도 모르는, 혹은 그냥 가볍게 웃으며 지나칠 수도 있는 선택을 하려는 참이었다.



석율은 그래를 임신 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오메가를 임신시키는 알파는 수없이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95% 이상, 아니 99%에 가깝게, 그저 육체의 유희를 위해 오메가를 임신시킨다. 사정 후 오메가의 몸 안에서 성기를 부풀린 채 머무는 행위, 노팅(Knotting)은 알파의 절정을 극대화시키고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발정기를 맞은 오메가에게 알파가 노팅을 할 경우 오메가는 100% 임신하게 된다. 예외는 없었다. 알파들은 오직 섹스할 때 좀 더 극치감을 느끼기 위해 서슴없이 오메가에게 노팅을 했다. 그 이후 오메가가 임신을 하든 말든, 그래서 알파의 아이를 낳든 말든,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는 어디로 치워버리고 계속 섹스하면 그만이었다.


혹은 아이를 낳기 전에 치워버릴 수도 있었다. 이 세상에 알파를 원하는 오메가는 수없이 많았다. 알파가 원하는 쾌락을 가져다 줄 오메가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알파에게 오메가는 철저한 성노예나 마찬가지였다. 오메가는 그런 알파에게 반항할 수 없었다. 호르몬으로 제압당하고, 노팅당하면 게임 끝이었다. 오메가의 향기에 눈이 먼 알파들이 노팅섹스를 한 뒤 버리는 스토리는 시시한 주간지의 3류 스캔들보다도 못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오메가들이 원하지 않던 알파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벌어먹여 살리기 위해 창녀같은 짓을 해야만 했던가.


하지만 오메가는 오메가. 오직 알파를 위해 만들어진 이 형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정기가 오면 끊임없이 알파의 몸을, 알파의 씨를 원했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알파의 노팅에 다리를 바르르 떨며 환희의 비명을 지르는 것이 오메가였다. 그 본능이 얼마나 지독한지, 지금 장그래도, 이렇게 의식을 잃은 상황에서도 알파인 석율의 냄새를 맡고 그 씨를 받기 위해 밑에서 꿈틀거리며 다리를 활짝 열고 있었다.


석율은 손가락으로 조심히 그래의 밀부를 만지고 더듬었다. 그래의 아랫쪽은 촉촉하게 젖어 액을 흘리고 있었다. 이렇게, 알파의 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정말 개같은 본능이었다. 만약 지금 그래를 안는 사람이 석율이 아니었다면 그래는 누군지도 모르는 알파의 애를 배게 됐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어떤 알파를 만나 강간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석율 또한 그래에게는 낯선 사람과 별 차이 없을지도 몰랐다. 아마도 그래는 의식을 잃은 채 임신하게 되는 일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 상대가 석율이든 누구든. 장그래의 성격을 보면 100% 그랬다. 그래가 알파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는 것을 바랄 리가 없었다. 그것도 대기업 계약직으로 간신히 입사한 지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율은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래를 향한 마음을 깨달았고, 그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디로도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석율은 천과장에게 당한 그래를 보고 충격받았다.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를 건드리려는 사람이 자기뿐일까? 이렇게 예쁜 오메가를? 그럴 리가 없다. 장그래가 오메가인 것은 언젠가 밝혀진다. 천관웅에게 들킨 것처럼. 오 차장에게 들킨 것처럼. 최 전무에게 들킨 것처럼. 비밀이 지켜진다고는 했지만 그 말은 허무한 약속같은 것이었다. 장그래는 특이체질이라고 천관웅이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시간 문제일 뿐.



석율은 그래를 임신시키고, 결혼까지 할 생각이었다.



이 모든게 젊은 알파의 성급한 마음에서 비롯된 억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석율은 진지했다. 그는 장그래를 향한 사랑에 확신이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자기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물론 그러지 못할 지도 모른다. 최소한 장그래를 자신의 오메가로 묶어둘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 한석율이라는 알파는 장그래라는 오메가에게 미쳐있었다. 과거 석율의 첫사랑이 오메가 남성에게 미쳤던 것처럼.


그녀가 오메가 남성을 사랑한다고 할 때, 석율은 미쳤냐고 물으며 한껏 비웃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운명의 장난인가. 그랬던 석율 자신이 바로 한없이 천한 오메가 남성을 사랑하게 되었다.



놓치고 싶지 않아.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아. 나만의 것이야.



석율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에게 미움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래를 가지려는 석율 또한 아직 자격이 없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사랑과 혼란한 상황 속에서 그래만큼이나 방황하고 있었다. 부디 이 선택이 옳은 선택이길. 석율은 자신의 페니스를 쥐고 그래의 입구를 찾아 위 아래로 살살 문질렀다. 미끈미끈한 그래의 액이 석율의 페니스에서 흘러나온 프리컴과 뒤섞였다. 석율은 마침내 그래의 입구를 찾아내고, 손으로 잘 조준시킨 뒤 천천히 엉덩이에 힘을 주어 그래의 몸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응....!!"



그래가 반응했다. 그래의 눈이 마치 뜨이려는 것처럼 경련했다. 석율은 좀 더 허리를 밀어넣었다. 천천히 석율의 두꺼운 페니스가 그래의 몸 안으로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액이 잔뜩 나왔던 덕분에 삽입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석율은 그래의 목에 남은 희미한 붉은 자욱을 보며 더 깊게 자신의 페니스를 밀어넣었다. 석율은 울컥거리며 솟구치는 울분을 삼키고 있었다. 석율의 페니스가 멈추지 않고 밀려들어갔다. 천관웅이 장그래의 몸을 다 뚫어놓았다는 확고한 증거였다. 



장그래, 넌 천관웅과 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천관웅과 무슨 얘길 나눴어?

설마 그에게 마음을 준 건 아니겠지?



질투심이 검은 구렁이처럼 석율의 안쪽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당장이라도 그것이 목구멍을 치밀고 나올 것만 같았다. 석율의 눈에 분노의 불꽃이 일렁였다. 그래가 끙끙거리며 고개를 젖히고 신음을 흘리는데도 그랬다. 석율은 단단하게 아래를 짚은 자신의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무릎으로 시트를 누르며 좀 더 몸을 앞으로 쏟았다. 그래의 다리가 점점 위로 들어올려졌다. 이미 석율의 페니스가 다 삼켜진지 오래였다. 석율의 자세는 마치 그래를 찍어누르는 것 같았다. 그래의 맨 다리가 경련하듯 부들대며 떨렸다.



내가 너의 처음을 가졌어.

내가 너의 몸을 열었어.

내가, 지금 내가 너를 임신시킬 거야.



석율의 눈이 휘번득거렸다. 어느새 방안은 알파의 향으로 진동을 하고 있었다. 석율의 분노가 그대로 느껴지는 향이었다. 굳이 문을 잠그지 않았더라도, 그 누구도 이 방에 얼씬하지 못할 것이었다. 석율은 "씨이발"하고 나지막하게 욕을 읊조렸다. 자신의 몸에 굵은 알파의 페니스가 끝까지 들어갔는데도 장그래는 눈을 뜨지 않는다. 다만 눈꺼풀과 온 몸을 떨며 "으응, 응..."하고 신음을 흘려댈 뿐이었다. 석율은 화가났다. 장그래가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 화가났다. 석율은 허리를 한 번 뒤로 크게 뺐다. 그래의 뱃속에 가득 들어찼던 페니스가 잔뜩 젖어 미끌한 채 거의 그래의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귀두만 간신히 그래의 입구에 걸쳐 몸을 연결한 채 그래를 쳐다보던 석율은 어금니를 앙문 소리로 그래에게 말을 걸었다.



"장그래, 정신 차려."



쾅! 그와 함께 석율의 몸이 그래에게로 내리꽂혔다. 두 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찰싹! 하고 났다. 그래의 몸이 크게 경련했다. "아응..!!!" 그래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러나 그래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그래의 눈은 잔뜩 찡그려져 있었다. 벌어진 입술 안의 붉은 혀가 요염하게 느껴졌다. 석율의 팔을 간신히 붙들고 있던 그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의 짧은 손톱이 석율의 팔뚝을 긁었다.



"내가 지금,"



다시 몸을 물린 석율은 또 한번 쾅 하고 몸을 쳐내렸다. "아윽...!!!" 그래의 몸이 뒤틀렸다. 그래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였다. 석율은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의 달달 떨리는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건 채, 석율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래의 몸 속 가장 깊은 곳으로 자신의 페니스를 내리꽂았다.



"너를, 안고, 있잖아!"



쾅!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그래의 손이 좀 더 올라가 석율의 팔뚝 윗쪽을 잡았다. 그래의 입에서 좀더 큰 교성이 흘러나온다. 아니, 고통의 신음소리 같기도 하다. "아아!! 아으...!!!" 그래의 손이 부질없이 석율의 단단한 몸을 긁으며 흘러내렸다. 석율의 팔뚝에 생채기가 났다. 얇게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석율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석율은 점점 속도를 냈다. 그래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뒤로 완전히 제꼈다. 아아, 아윽, 아흑, 울음같은 교성이 방을 울렸다. 석율은 자비없이 그래의 몸을 범하고 있었다. 그는 내리꽂을 때마다 분명하게 그래의 끝쪽에 닿고 있었다. 장그래의 작은 자궁. 그 입구. 그 연약한 살에 몇 번이나 석율의 단단하고 뜨거운 페니스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듯 세게 찍어눌러 내려왔다.


그래의 가늘고 흰 다리가 석율의 어깨 위에서 부질없이 흔들렸다. 석율은 어느새 이마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땀이 그래의 얼굴 위로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두 사람의 몸은 어느새 누구랄 것 없이 흠뻑 젖어 있었다. 석율은 자궁 입구를 찍어내릴 때마다 꿈틀거리며 자신의 것을 꽉꽉 물어오는 그래의 아랫쪽에 헛웃음이 나왔다. 눈은 절대 뜨지 않으면서, 이렇게 몸만 쾌락을 더듬어 찾는 것인가?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상관 없겠지? 천관웅이라도 상관 없겠지?



"이런...씨발...!!"



순간이었다. 그래의 몸이 튀어오를 정도로 박아넣은 그 때, 석율의 사정과 동시에 노팅이 시작되었다. 그래의 다리는 여전히 석율의 어깨 위로 걸쳐진 상태였다. 석율은 그래의 고개 옆에 손을 짚은 채 완전히 그를 찍어누르듯 하고 있었다. 그래의 엉덩이와 석율의 앞이 한 치의 빈 틈도 없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건만, 석율은 본능적으로 좀 더 깊은 곳에 노팅하기 위해 둔부에 힘을 주고 그래의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 하체를 들이밀고 있었다. 깊이, 더 깊이. 장그래의 몸 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그곳에 씨를 뿌리기 위해. 흰 점성의 정액이 경련하는 페니스에서 끝없이 흘러나왔다. 그래의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렸다. 석율은 허리를 느릿하게 돌렸다. 페니스 끝이 부풀며 그래의 안쪽을 꽉 채웠다. 석율은 사정의 여운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래의 몸이 움찔거렸다. 석율의 부푼 귀두가 그래의 내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석율은 헉헉거리며 거친 숨을 그래의 귓가에 내뱉었다. 그래는 끝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석율이 숨을 다 고르는 시간 동안에도. 마침내 부풀었던 페니스가 원상복귀 되고 석율이 몸을 빼내자, 주륵 하고 그래의 입구에서 흰 액이 흘러내렸다. 석율은 흘끗 내려다보곤 손가락 두 개로 꼼꼼히 훑어올린 후, 다시 그래의 몸 속으로 넣어주었다. 집요한 행위였다. 석율은 베개를 끌어당겨 그래의 엉덩이 아래에 받쳐주었다. 휘번득거리는 석율의 눈은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그래의 머리를 끌어당겨 이마에 키스해주었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끝까지 눈을 뜨지 못한 것이 나을 지도 몰랐다. 석율은 짐승처럼 그래의 온 몸을 꽉 끌어안은 채 숨을 씩씩대고 있었다.




내 거야.


장그래.


이제 벗어나지 못해.


넌 내 아기를 갖게 될 테니까. 




오직 그래만이 아무것도 모른 채, 석율의 몸 아래서 축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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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웅그래/천그래] 병가지상사 ('라면' 후속편)

ㄴ미생 기타 2015. 5. 2. 18:48



전편 '라면' 보기





침대에서 일어난 관웅은 생각했다. 아, 이건 아니야. 이건 정말 아니야. 

그는 고개를 떨구고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가. 
오늘도 모텔방에서 벌거벗은 채, 아직 세상 모르고 잠든 장그래를 품에 안고 깨어났다. 
왜, 왜 인간 천관웅(37/대기업경력직/기혼)의 인생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두 번 씩이나 일어났는가????? 

도대체 왜???????? 







[ 병가지상사 ] 







관웅은 이미 장그래와 사고를 친 전력이 있었다. 
그렇다...그것은 약 두 달 전, 장그래와 함께 해외 바이어 접대를 했던 주말의 일이었다. 

유난히 지저분한 접대를 원하던 바이어는 장그래에게까지 마수를 뻗었고, 그런 그래를 방어해주던 천과장은 술을 많이 마셨었다. 당사자인 장그래도 취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장그래가 그토록 먹고싶다고 종알거리던 라면을 사줬지만, 고주망태가 된 그래는 결국 천과장의 손에 끌려 모텔에 도착한 뒤 침대에서 빛의 속도로 잠들고 말았던 것이다. 


아아. 


이 둘의 얘기가 여기까지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새벽에 관웅이 비몽사몽하며 그래를 만지던 것이 사고의 시작이었으니.... 
정말 천관웅은 100% 부인의 몸으로만 생각했었다. 자신의 옆에 얌전히 누워있는 나신의 주인공을. 
물론 만져가며 약간의 위화감은 느꼈지만, 취한데다 잠결이기까지 하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넘어갔던 것이다. 머리가 짧다거나, 가슴이 없다거나, 상당히 말랐다던가 그런 것들... 게다가, 하필이면 그래의 술버릇 중 하나가 취해서 잠들면 옷을 다 벗어던지는 것이었다. 

관웅도 그래도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서로를 더듬고 만져지고 하다가 마침내 엎치락 뒤치락하며 몸이 엉키기 시작했다. 그래는 잠에 취해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도 관웅의 키스를 다 받아주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입만 열고 있었다는 것이 맞을까? 관웅은 유부남 N년차 답게 키스를 능숙하게 잘 했다. 
관웅은 관웅대로, 한동안 육아며 살림이며 하는 문제들 때문에 섹스리스였는데 간만에 거사를 치룬다고 생각하니 잔뜩 흥분된 상태였다. 술땜에 아직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벗은 몸의 주인에게 한껏 봉사하며 착실히 본능대로 육체를 움직였다. 

문제는 성난 기차가 터널로 들어간 직후였다. 부드러운 애무에 취해 관웅이 인도하는 대로 얌전히 다리까지 벌리며 자신의 몸 위로 올라타는 상대를 받아주던 그래였지만,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 두 다리 사이에서부터 척추를 가르며 올라오는데 저절로 두 눈이 번쩍 뜨이고 "아, 아파아!" 하는 비명이 나온 것이다. 
그제서야 천과장은 반쯤 감고있던 눈을 확 떴다. 그래는 고통에 다시 눈을 감은 뒤 뜰 생각같은 건 하지 못하고, 잔뜩 찡그린 채 눈꼬리에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 아파요, 그만, 그만....." 

"자, 장그래?????" 

"아파요...아파..." 


관웅은 너무 당황해서 안구가 쏟아지고 허파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지금, 여기, 분명, 자신의 두 팔 아래 누워있고, 자신의 상체에 몸이 깔려있으며, 자신에게 다리를 벌려준 채, 제 몸 안으로 관웅의 일부를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은, 관웅이 근무하고 있는 종합상사 원 인터내셔널의 영업3팀 계약직이자 막내 사원인 장/그/래였다. 관웅은 이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굳힌 채 눈만 부릅 뜨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장그래도 피차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꿈 속에서 불상의 인물(장그래 멋대로 금발 미녀로 추측)로부터 온 몸을 부드럽게 애무당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찢어지고 꿰뚫리는 고통이 느껴졌으니 그야말로 누워있다 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그래는 아직도 많이 취해있었고 비몽사몽에 가까워 고통을 좀 덜 느낀다는 것이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침묵의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말 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 머리가 훨씬 복잡한 쪽은 관웅이었다. 

관웅은 유부남이었다. 유부남인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있었다. 게다가 지금 자기 밑에 깔려있는 건 부하 직원이다. 그냥 부하직원이 아니라 직급이 몇 개는 차이난다. 나이는 거의 띠동갑에 가깝다. 누가 봐도 관웅의 잘못이다. 관웅은 불륜을 저질렀다. 하룻밤의 실수니 뭐니 해도 불륜은 불륜이었다. 그것도 남자와! 아니, 저질'렀'다가 아니다. 저지르는 '중'이었다. 현재 진행형이었던 것이다!!! 


"......자, 장그래 씨." 


그래는 어질한 머리로 지금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려 애썼다.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 왠지 엄격하게 느껴지는 말투. 아빠가 생각나기도 한다. 누구지...누구더라..... 관웅은 정신 못차리는 그래의 얼굴을 몇 번 두들겨 보았다. 그러나 그래의 상태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관웅이 움직이지 않으니 고통도 덜 느껴지는 듯, 그래는 여전히 관웅의 목을 끌어안은 채 풀린 혀로 "누..구...?"하고 되물을 뿐이었다. 

관웅은 자신이 여기서 더 당황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이 놀라움은 시작일 뿐이었다. 

우선 지금 관웅은, 이 해괴망칙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신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에 경악했다. 보통 이런 일이 있다면, 상대가 누군지 깨닫자마자 온종일 땡볕 내리쬐는 처마 밑 무말랭이모냥 확 하고 쭈그러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관웅의 것은 간만에 눈을 떠서 그런지 보통 의기양양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같은 팀 부하, 나이차이는 10세 이상, 게다가 같은 남자임을 안 후에도 줄어들긴 커녕 당당하게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미친!!! 

관웅은 얼핏 알고 있었다. 장그래가 예쁘다는 것을. 곱게 생긴 얼굴이라는 것을. 


그러나 품 넉넉한 어두운 색깔의 양복과 딱딱한 넥타이로 그런 생각들은 다 가려버리고 있었다. 장그래는 그냥 기특한 구석이 있는 계약직 사원이었다. 막내 중에서도 막내같은 '우리 애'였다. 너무 마른 몸 때문에 정장 품이 남아돌 때는 보약이라도 먹이고 싶다는 삼촌의 마음이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관웅의 두 팔 아래에 있는 그래는 달랐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예쁜 이마 위로 흩어져 있다. 얼굴에는 어느새 땀이 송글 맺혀있고, 자신의 목에 엉켜있는 가늘고 흰 팔은 몹시 야하게 느껴진다. 그래는 천천히 눈을 뜨고 천과장을 올려보았다. 관웅의 심장이 갑자기 쿵 하고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없이 투명한 밤색의 눈동자가 자길 올려보고 있었다. 속눈썹은 한가닥 한가닥씩 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통통한 입술은 잔뜩 붉어져,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조금씩 움직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의 입술이 아까 키스했을 때 묻은 타액 때문에 반들거렸다. 


'안 돼. 안 돼, 제발 인간으로 남아있자, 천관웅!' 


관웅은 맘 속으로 외쳤다. 제발. 신이여, 거기 계시다면 앞으로 몇 년 더 섹스리스 해도 좋으니까 제발 이 아들놈 좀 죽여주세요! 앞으로는 가사도 육아도 진짜 열과 성을 다해 함께 하겠습니다. 돈 벌어온다는 핑계로 마누라 고생시키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절대로 다른 여자한테 눈 돌리지 않고 완전 집돌이 애처가 되겠습니다! 신이여 제발!!! 


-그러나 관웅의 신은 그 시간, 오차장네 집에 가 있었다. '신이여, 제발 힘을 주소서! 오늘 정기방어전 성공적으로 치뤄야 합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오차장(43세/기혼/자녀3남)의 곁에 말이다- 


그래는 지금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얼굴을 들고 바짝 가져다 댔다. 두 사람의 코가 닿을 뻔 하자 천과장이 멈칫 하며 몸을 뒤로 물렸고, 덕분에 아랫쪽은 좀 더 가까이 맞물리게 되었다. 그래는 미간을 찡그리고 관웅의 입술 바로 앞에서 "아파요..."하고 소근거렸다. 관웅은 거의 한계였다. 진짜, 진짜 거의 한계였다. 관웅은 정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자신의 허리를 그래로부터 떨어트렸다. 방금까지 따뜻한 그래의 몸 안에 담겨있던 성난 관웅의 분신이 조금씩 다시 세상 공기를 맛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들어오고 나가고는 그래에게 큰 차이가 없었다. 처녀인 그래에게, 두 움직임 다 피차 고통이었다. 오히려 뜨겁고 젖어있던 관웅이 물러가는 느낌은 소름까지 끼쳤다. 그래는 잔뜩 움츠리며 관웅의 목을 꼭 끌어안고 매달렸다. 하아 하아, 붉은 입술로 밭게 쉬는 숨에는 그래가 느끼는 감각이 다 새겨져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뾰족한 번개처럼 관웅의 귓 속을 파고들었다. 관웅이 기껏 몸을 물리는데도 그래가 매달리며 따라오니 상황이 난처했다. 게다가 그래는 어느새 슬그머니 관웅의 몸 위로 자신의 다리를 들어올려 끌어안고 있었다. 


"아....아파요.....살살...." 

"...장그래, 너 내가 누군줄 알아?" 


관웅은 술이 덜 깬 것 같은 그래를 보며 마지막 체념의 질문을 던졌다. 

장그래, 제발. 정신 차려서 날 발로 차고 비명을 지르고 주먹으로 때리란 말이다. 


".......장...님" 

"응? 내가 누군지 아냐고....." 

"과장님, 과장님....." 


그래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관웅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관웅의 목에 얼굴을 파묻은 그래는 계속 속삭였다. 


과장님, 관웅 과장님. 

천관웅 과장님. 

좋아해요. 

좋아해요....... 





관웅의 이성은 거기서 끊겼다. 









 



그랬던 것이 불과 두 달 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오로지 눈 앞의 상대가 누구인지만 인식하고, 둘 다 정줄을 놔버린 채 엉망으로 뒹굴었던 것이 두 달 전. 아침에 일어나서 함께 몸을 씻고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며, 오늘 일은 서로 잊자고 얘기했던 것이 두 달 전. 그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고, 관웅은 그런 그래를 끌어안고 한번 더 깊게 키스해주었다.

어리석은 소녀처럼 관웅의 목에 매달려 눈물 흘리는 그래를 보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던 관웅.
너무나 어처구니 없이 들켜서는 안될, 영원히 숨겨야 했던 마음을 꺼내버린 지난 밤의 두 사람.

관웅은 반듯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그래보다 먼저 모텔 방을 나섰다.
그런 관웅을 보고 침대에 엎드려 한참이나 엉엉 울었던 장그래.

사랑하자 마자 이별이었던 두 사람의 하룻밤이 두 달 전.


그 날 이후로, 두 사람은 다시 평범한 상사와 부하로 돌아왔다. 둘 중 누구도 '그 밤'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으며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관웅은 더 좋은 남편이, 더 좋은 아빠가 되었으나 여전히 섹스리스였고 그래는 석율의 장난어린 대쉬를 받으며 철벽을 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전과 같았다. 아무 것도 바뀐 것은 없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출장을 가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 두 사람이 다시, 한 침대에서 홀랑 벗은 채로 발견된 것인가???

그건 다음 번에 얘기하도록 하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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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웅그래/천그래] 라면

ㄴ미생 기타 2015. 5. 2. 08:11





실수였다. 

실수여야만 했다. 

그러나 실수라기엔 모든 기억이 너무 생생했다. 





[ 라면 ] 





관웅이 눈을 뜬 것은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머리는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어제 독한 술만 골라 마셨던 걸 생각하면 무난한 수준이었다. 머리를 몇 번 흔든 관웅은 습관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그가 절대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킹사이즈 베드에 미끈한 어깨와 등을 드러내고 옆으로 누운 저 모습은, 저 동그란 뒷통수는. 


갑자기 괜찮다고 생각했던 관웅의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마르고 가늘어 보이긴 했지만, 저건 어딜 봐도 여자의 라인이 아니었다. 차라리 소년과 청년의 중간에 있는 몸이라고 보는게 맞다. 그렇다는 것은, 저 몸의 주인은 남자다. 내가 남자와 어제 이곳에.......? 

관웅은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의 몸을 살폈다. 분명 나신이다. 침대 주변에는 어지럽게 두 사람 분의 옷가지가 흐트러져 있다. 어떻게 두 사람 분인걸 알았냐고? 바지도 두 개, 팬티도 두 개니까. 관웅은 점점 더 머리가 아파왔다. 내가 설마 남자와...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했다고? 


하지만 어제는, 

어제는 바이어 접대 자리였는데. 

아니 그 이전에, 

난 남자는 취미 없는데....? 


관웅은 재빨리 어제의 일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중동쪽에서 올라왔던 바이어는 융숭한 대접을 원했다. 관웅은 처음에 서포트 인원 없이 두 명의 바이어를 모시고 강남쪽으로 향했다. 바이어들의 요구로 꽤 고급 풀살롱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오 팀장에게 전화가 와 사람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없어도 될 것 같았지만 술이 들어갈수록 진상이 되어가는 바이어들을 보니, 서포트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왔던 것이. 


그래서 왔던 것이 하필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던 계약직 막내 사원 장그래였다. 


변변히 사람 몫이나 하겠나 싶었던 관웅의 우려와는 달리, 그래는 아가씨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곱상한 얼굴을 하고선 테이블에 이마를 박아 폭탄주를 마는 등 바이어들을 기쁘게 해주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렇게 시간은 금방 새벽으로 넘어갔고, 아가씨를 한 명씩 끼고 앉아있던 그들은 본색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장그래에게 노래를 시키거나 춤을 추게하는 것 까진 괜찮았지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아가씨들에게나 시킬 법한 일들을 요구하니 관웅의 표정도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웅이 공으로 과장 직급을 단 것은 아니라, 그는 장그래를 다시 자신의 옆자리에 앉혀 보호하면서도 바이어들의 기분을 최대한 상하지 않게 만든 후 바로 풀살롱 윗층, 즉 침실로 그들을 아가씨와 함께 올려보냈다. 

장그래는 바이어들에게 농락당했던 그 잠깐의 시간 동안 혼이 나간 것인지 바이어 일행이 모두 나가고 나서도 제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시선은 아래로만 꽂혀 있었다. 관웅은 아직 나이도 어린 장그래가 이런 일을 겪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또한 혹여 이런 퇴폐 접대를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아무튼 관웅의 마음은 완전 조카를 대하는 삼촌의 그것이었다. 누가 뭐래도 장그래는 관웅과 열 살도 넘게 차이가 나는 '꼬맹이'니까. 


"장그래 씨. 괜찮아?" 

"예?? 아, 예. 전 괜찮습니다, 과장님....." 


괜찮기는 개뿔. 그대로 뒀다면 바이어들은 그래에게 스트립쇼나 산삼주라도 시켰을 것이다. 정말 그런 꼴까진 보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다. 저들이 원하던 대로 아가씨까지 끼고 밤을 보내게 해줬으니, 계약은 뒷말 없이 어떻게든 진행 될 것 같았다. 간만에 더티한 놈들이 걸려서. 


"욕봤어. 나가자." 


관웅은 그래의 어깨를 툭 치고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그 모습을 황망히 바라보던 그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멀쩡해보이던 얼굴과는 달리 아까 꽤나 쇼크를 받았는지 장그래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기어이 테이블과 소파 사이에서 다리가 엉켜 관웅 쪽으로 고꾸라지던 그래를 재빠르게 받아내자,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상사의 품에 안겨서는 금세 귀가 시뻘개진다. 관웅은 작게 한숨을 쉬며 그래를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정말 괜찮아?" 

"아....." 

"...." 

"솔직히.....잘 모르겠습니다.........딸꾹." 


가관이었다. 그래의 입에서 딸꾹질이 나왔다. 깜짝 놀란 듯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막아버린 장그래였지만, 한 번 터진 딸꾹질은 마치 댐이 무너진 것처럼 딸꾹, 딸꾹하며 계속 쏟아졌다. 관웅은 그제서야 그래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룸 안의 색색깔 조명들 때문에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래의 눈가가 벌겋게 흐린 것이 와서 분위기 띄운다고 급하게 마신 술로 벌써 알딸딸하게 취한 것 같았다. 


하아. 


관웅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 
그나마 오늘이 금요일인 것이 다행이었다. 


"장그래 집이 어디지?" 

"수....딸꾹, 수색동이요. 딸꾹!" 

"오늘은 택시 타고 들어가서 비용 청구해. 들어갈 수 있지?" 

"딸꾹, 그게.....딸꾹," 

"왜, 뭐 문제 있어?" 

"그.....딸꾹! 과장님, 그러니까 과장, 님.......딸꾹!" 

"나 뭐." 

"왜 그러고 딸꾹! 계세요??" 

"내가 왜." 

"딸꾹, 과장님이, 딸꾹! 이케.....드 명......." 


아 XX 설마. 장그래. 


"헤헤, 과장님, 딸꾹! 과장님이 드 명이네여? 딸..꾹!!" 


장그래 발음이 급속하게 꼬여갔다. 다시 한 번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맞춰보니, 장그래 얼굴에서 헤실헤실 웃음이 발사되고 있다. 그 얼굴이 또 완전 어려보여서 관웅은 급격히 당황스러워졌다. 그런 관웅의 형편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는 헤실대며 관웅을 향해 웃음을 쏘아댄다. 


"과...장님! 딸꾹.....우리, 해장하고 가여! 딸꾹!" 

"장그래." 

"딸꾹! 라면...나 라면 디게, 잘 끓이는데.....딸꾹!" 

"장그래," 

"이케이케....파 송송....계란 탁!! 딸꾹~" 


그래는 급기야 눈을 감고 파 써는 흉내를 내더니 팍 하고 계란(?)을 관웅 코 앞에 깨트린다. 가만 뒀다간 바로 넘어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관웅은 그래를 두 손에 안고 그 꼴을 다 보아야 했다. 이대로 택시 태워 보내면 귀가는 고사하고, 어디 어두운 놀이터에서 아리랑치기나 안 당하면 용한 상황이다. 


"과...과장 딸꾹! 님이, 라면 맛을 아라여??" 

"...너 일단 여기서 좀 나가고 보자." 


관웅은 한숨을 쉬고 그래를 부축해 문을 열고 나갔다. 오늘 돈을 많이 쓴 관웅 일행을 보고, 상무며 마담이 뛰쳐나와 융숭하게 인사를 한다. 어이쿠, 여기 이 분 괜찮으시겠어요? 완전 갔네, 갔어. '상무님'이 장그래 걱정을 하며 관웅을 쳐다본다. 관웅은 자기 팔에 눈을 감고 기댄 채 계속 옹알이처럼 뭐라 중얼거리는 장그래를 내려다 보며 또 한번 한숨을 쉬었다. 장그래 소원대로 라면 먹고 가는 수밖에. 일단 술은 깨야할 것 아닌가. 

가게에서 완전히 나와, 거리로 나가자 늦여름인데도 꽤 쌀쌀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관웅은 피곤했다. 갑자기 한 열 살은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이런 꼬맹이를 접대 자리에 부르는게 아니었는데. 
취해서 기껏 파송송 계란탁 거리는 애기를. 
후회 막심이다 정말. 


속으로 쓰게 반성하던 관웅은 곧 다시 정신을 차리고, 강남 뒷골목 포차촌으로 그래를 부축해 데리고 갔다. 








"장그래. 라면 맛있냐?" 

"......맛 없는데요. 딸꾹!" 


관웅은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지금까지 관웅이 회사에서 보아왔던 장그래라는 청년은,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고, 상사의 말을 하늘같이 모시는, 그러면서도 자기 주장을 내세울 때는 또 내세우는, 그런데도 외모는 참 여려보이는 그런 캐릭터였다. 그러나 지금 포차 안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이 장그래는, 그냥 어디 대학가에서 주정뱅이 한 명을 툭 뽑아온 것만 같은 캐릭터로 변해 있었다. 


"...장그래 주사가 좀 있구나." 

"과장님...나 이거 딸꾹, 안 머글래요." 


아까부터 라면그릇을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인양 코를 박고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래가 갑자기 어린애처럼 땡깡을 부렸다. 관웅은 뭐라고 하려다가, 그것조차 귀찮아져 그냥 유리컵에 물이나 잔뜩 따라 그래에게 내밀었다. 


"라면 안 먹을 거면 물 마셔." 

"시른데.....딸꾹." 

"마셔야 술 깨지." 

"시러여............딸꾹." 

"아까 라면 먹고 싶다며?" 

"딸꾹! 라면에.....딸꾹, 계란이 없다......딸꾹" 


혼잣말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신경 거슬리게 하는 반말이었다. 관웅은 잠깐 이마를 짚고 속으로 참을 인 자를 세 번 그렸다. 
사실 장그래만 취한 것이 아니었다. 관웅도 취기가 올라온 상태였고 피곤했다. 이 자리는 연이은 지방 출장 뒤 쉬지도 못하고 바로 투입된 접대자리였다. 장그래? 아까 잠시 유용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서포트는 커녕 짐짝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버리고 갈 수도 없는 짐짝. 아주 애물단지다. 

그럼 그렇지, 이런 어린애가 뭘 한다고. 

월요일 출근하면 오 팀장에게 아주 진상을 부려야겠다고 다짐하는 관웅이었다. 








"자, 장그래 다 왔다. 얼른 자라!" 


그렇게 술은 깰 기미를 보이지 않고, 관웅도 점점 어지러워지고, 먹으라고 시켜준 라면은 먹지도 않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래를 데리고 관웅이 온 곳은, 강남 뒷골목에 흔하디 흔한, 아니 흔한 것보단 좀 더 고급스러운 모텔이었다. 젊은 영혼들이 주말 밤을 불태우고 있는 것인지 일반실은 다 차있어서 본의아니게 특실로 업그레이드를 해버리게 되었고. 

관웅은 손목시계를 살폈다. 벌써 새벽 4시였다. 이미 와이프도 잠들었을 시간. 아까 잠시 문자를 보내놓긴 했지만, 외박이 되는건 변함없다. 관웅은 고개를 흔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주말에 와이프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넌더리가 났다. 이게 다 장그래...요 녀석 때문에.....! 

관웅은 새삼 그래가 얄미워 어깨를 부축해놓은 그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는 발그레한 얼굴로 얌전하게 관웅의 팔에 기대있을 뿐이었다. 눈은 반쯤 감겨있는데, 속눈썹이 참 길고 눈매가 참 야살스럽게 생겼........ 


아 잠깐. 

내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지. 

아무래도 오늘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관웅은 침대 쪽으로 그래를 끌고 가 일단 그 위로 앉혀놓았다. 그러자 앉혀놓기가 무섭게 그래는 베개를 찾아 일자로 누워버린다. 관웅은 잠깐 고민했다. 집으로 들어갈까, 말까. 지금이라도 택시를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1~2시간 내에 첫 차가 다니기 시작할 것이다. 돈이 좀 아까웠다. 누워서 벌써 도롱거리는 그래를 보니 관웅도 피곤한 몸을 뉘이고 싶은 맘이 간절하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토요일이 됐다. 모텔비는 관웅의 지갑에서 나갔다. 침대는 넓고 깨끗하다. 

관웅은 재킷을 벗어던진 후 그래 옆에 풀썩 누워버렸다. 누운 채 넥타이를 풀어 방바닥에 던지고, 리모콘을 찾아 실내등을 다 꺼버리고, 


관웅도 잠이 들었다. 









관웅은 잠결에 와이프를 끌어안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보드라운 살결이 만져졌다. 
웬일이지, 옷을 벗고 자다니.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밤일도 하기 힘들 정도로 나날이 빡셌던지라, 관웅의 아내는 언제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에게 갈 수 있도록 항상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왜 오늘은....? 

관웅은 이런거 저런거 생각하기 귀찮았다. 어제의 접대는 너무 고달팠다. 관웅은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였고, 방 안은 캄캄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관웅은 비몽사몽 하는 중에도 오랜만에 아내의 맨 몸을 만지게 되자 흥분했다. 그도 그럴게, 관웅도 사내였다. 아직 30대. 아침마다 어김없이 씩씩하게 텐트를 치는 '사내'였던 것이다. 


"여보..." 


관웅은 슬그머니 아내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그리고 어깨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래도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깊게 잠든 모양이다. 순간 관웅의 마음 속에 조금 야한 욕망이 싹텄다. 관웅은 일단 자신의 셔츠를 벗었다. 셔츠를 다 벗자, 이번엔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벗어 침대 밖으로 던졌다. 부드러운 시트와 이불이 맨 살 위로 느껴졌다. 관웅은 눈을 감은 채 아내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어느새 두 사람의 몸은 착 겹쳐져 있었다. 관웅은 아내의 뒷통수에 한번 쪽 하고 키스한 후 뒤에서 깍지를 꼈다. 아아. 이게 얼마만에 안아보는 아내의 몸인가. 이게 얼마만에 제대로 해보는 XX인가...! 



근데.... 

요즘 애 돌보느라 고생이 심했던 걸까. 

몸이 많이 말랐네..... 

샴푸도 바꾼 건가? 향도 좀 다른데. 

에라. 

모르겠다. 

오늘 아침은 욕망에 충실하련다. 



관웅은 꿈결인 듯 졸린 눈을 그대로 감은 채, 아내의 고개를 돌려 깊이 입맞추기 시작했다. 









몸이 간질간질하다. 어깨에 따뜻하고 촉촉한 것이 내려앉는다.
곧이어 누군가가 자신의 고개를 돌려 입맞춰 온다. 그래는 얼결에 입을 다물었지만, 곧 부드럽게 뺨을 훑어오는 손길에 조금 입술을 열어주고 말았다. 그러자 곧바로 뜨거운 뭔가가 입 안으로 들어와 헤집고 핥아댄다. 그래는 숨이 막힐 정도로 깊은 키스를 받았다.


아. 기분 좋은 키스다....

근데 잠깐.

여기가 어디지?

지금이 몇시지?

나 분명 어제......



음.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저 계란도 없이 성의없게 끓여져 있던 라면의 초근접 화상. 

왜, 왜 이런게 머릿속에.


뭐지...
라면......계란도 없이 파만 송송.......
라면..........



그래 머릿속이 순식간에 아찔해졌다. 세상이 진짜로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 이 기분은 뭐지. 어지럽다. 이건 꿈인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래는 자신의 맨 살 위를 스치는 따뜻한 손길에, 한없이 깊게 다가오는 입술에 모든 생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기분 좋은 꿈은 오랜만이니까.


그래는 철썩같이 이 모든게 꿈이라 믿으며,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은 이를 향해 몸을 돌리고 다시 입맞춤을 돌려주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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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웅그래/천그래] 알고 있어 (토마토님 리퀘)

ㄴ미생 기타 2015. 5. 1. 17:58



[알고 있어]







업무차 손님과 밖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들어온 관웅은 책상 위에 놓여있는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쪽지를 발견했다. 영문을 모를 쪽지에 주변을 둘러보다 관웅은 문득 앞자리에 앉은 장그래와 눈이 마주쳤다. 장그래는 고개를 까딱 하고 관웅과 눈을 맞추며 인사했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작게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제서야 관웅은 그래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깨달았다.


팀 막내인 장그래가 유난히 군것질을 좋아해서 책상 서랍에 항상 맛있는 것들을 채워두고 있다는 것을, 사실은 팀에서 관웅이 제일 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알게된 후론 항상 그래의 뒷모습을 주시하고 있는 그였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고, 그저 꼼질거리며 책상을 열고 안을 더듬어 단 것을 찾아 입에 쏙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이 귀여워서였다. 꼭 다람쥐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어느날, 관웅은 한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그 다람쥐가 바로 자신을 좋아한단 사실이었다. 굳이 알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과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쑥스러운듯 고개를 피하며 볼을 발갛게 물들이는데 알아채지 못할 수 없었다. 왜 하필 남자인, 그것도 유부남인, 나이도 열한 살이나 많은 자신을 좋아하게 된 걸까? 장그래가 (숨기려 하지만) 내비치는 감정은 단순한 동경이나 호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관웅은 30대 후반의-연애도 결혼생활도 해볼 만큼 해본-남자로서, 도무지 저 어린 청년이 어쩌다가 자신을 사랑하게 됐는지 도통 모를 노릇이었다. 한창 알콩달콩한 연애를 할 시기가 아닌가, 저 또래는. 자신만큼이나 어리고 풋풋한 여성과, 사랑으로 인한 모든 첫 경험들을 하며. 그런데 왜 이런 닳고 닳은 유부남에게 엉뚱한 감정을 품은 것인가? 관웅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편으로는, 저 나이땐 모든 것이 다소 충동적이고 무모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장그래에게 다소 냉정하게 굴었던 관웅이었다. 결코 좋은 감정 가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장그래는 자신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사명감을 사랑과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장그래의 감정이란 관웅에게 다소 미스테리어스한 것이었다.


관웅은 일어서서 그래에게 다가갔다. 그래가 흠칫 놀라며 다시 뒤돌아 자리에 앉은 채 관웅을 올려보았다. 관웅은 싱긋 웃고 "사실은 내가..."라고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가 장그래에게 내민 것은 회사 근처의 유명하다는 제과점에서 사온 쿠키였다. 한 개에 천 오백원 짜리. 딱 받기에 부담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성의없어 보이지도 않고. "오늘 손님이랑 커피 마신 데가 이걸로 유명하다길래."


그래의 눈이 놀라움에 커졌다가, 얼른 두 손을 내밀어 그 쿠키를 받는다. "가, 감사합니다 과장님," 관웅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씩 웃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장그래는 좀처럼 손에 든 쿠키에서 눈을 뗄 줄을 모른다. 얼굴은 벌써 벌개져있다. 뜨거운 두 뺨을 본인도 느꼈는지, 얼른 의자를 돌려 모니터에 얼굴을 박는다.


관웅은 가끔 생각했다. 자기가 더 젊었으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장그래와 같은 나이였다면. 그러나 그는 이미 37살이기에 그런 가정따위 무의미한 것이었다. 자신이 아직 싱글이었다면 어땠을까, 이 또한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것이었다. 자신은 이미 나이들었고 결혼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하나 깨닫게 된 것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장그래가 알았다면 정말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그래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



관웅이 깨달은 진실은 이것이었다. 어릴 수록 쉽게 사랑하고, 나이 들수록 사랑에 빠지기 어려워 진다. 때문에 나이 들어 하는 사랑일수록 더 깊고 뜨거울 수 있다.



자신의 장그래를 향한 표현은 딱 이정도가 좋다. 귀여운 팀 막내에게 간식거리를 가끔 챙겨준다거나 하는. 그러나 여기서 더 나가면 곤란한 것이다. 장그래는 절대로 관웅의 마음을 알아선 안 됐다. 조그만 마음의 조각조차 눈치채서는 안됐다. 대신 관웅만이 장그래의 마음을 알고, 느낄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느낀다 할지라도 모르는 척 해야 했다. 사랑하지 않는 척. 사랑받는지 모르는 척.


장그래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열 때문에 자신의 두 뺨을 손으로 감쌌다. 오늘따라 왠지 천과장의 눈빛이 따뜻한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관웅 과장님은 내가 좋아하는 것도 모르는데. 안다 해도, 날 좋아해주실 리 없는데. 모든 것이 관웅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래는 착실하게 관웅의 의도 안에서만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의 사랑은 어디로도 뻗어나갈 수 없었다. 심지어 관웅에게로도.


관웅은 허둥대는 그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담배를 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때면 관웅은 담배를 피지 않고 버틸 자신이 없었다. 넝쿨보다도 빠르게 자라나는 자신의 마음을 얼른 뿌연 연기로 감춰야만 했다. 관웅은 자신이 어쩌다 이런 불량 중년이 되어버린 것인지 한심했다. 장그래가 왜 날 사랑하냐고 묻는 것보다 그 반대가 더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 천관웅은 왜 장그래를 사랑하는가?


평생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임을 알면서도.


장그래, 네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도.



옥상으로 올라간 관웅은 사람 없는 곳으로 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언젠가 장그래 안의 그 설익은 감정은 정리가 될 것이다. 관웅을 잊고 아마도 예쁜 여자를 만나 진짜 사랑을 하게 되겠지. 거기까지 생각하면 관웅의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더 관웅은 모르는 척 해야 했다. 모든 것을. 나의 마음을, 너의 마음을.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깊이 한모금 빨아들인 관웅이 연기를 공기중에 뱉어냈다.

연기로 가려진 시야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관웅은 이제 자신의 마음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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