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웅그래/천그래] 병가지상사 ('라면' 후속편)

ㄴ미생 기타 2015. 5. 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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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일어난 관웅은 생각했다. 아, 이건 아니야. 이건 정말 아니야. 

그는 고개를 떨구고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가. 
오늘도 모텔방에서 벌거벗은 채, 아직 세상 모르고 잠든 장그래를 품에 안고 깨어났다. 
왜, 왜 인간 천관웅(37/대기업경력직/기혼)의 인생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두 번 씩이나 일어났는가????? 

도대체 왜???????? 







[ 병가지상사 ] 







관웅은 이미 장그래와 사고를 친 전력이 있었다. 
그렇다...그것은 약 두 달 전, 장그래와 함께 해외 바이어 접대를 했던 주말의 일이었다. 

유난히 지저분한 접대를 원하던 바이어는 장그래에게까지 마수를 뻗었고, 그런 그래를 방어해주던 천과장은 술을 많이 마셨었다. 당사자인 장그래도 취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장그래가 그토록 먹고싶다고 종알거리던 라면을 사줬지만, 고주망태가 된 그래는 결국 천과장의 손에 끌려 모텔에 도착한 뒤 침대에서 빛의 속도로 잠들고 말았던 것이다. 


아아. 


이 둘의 얘기가 여기까지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새벽에 관웅이 비몽사몽하며 그래를 만지던 것이 사고의 시작이었으니.... 
정말 천관웅은 100% 부인의 몸으로만 생각했었다. 자신의 옆에 얌전히 누워있는 나신의 주인공을. 
물론 만져가며 약간의 위화감은 느꼈지만, 취한데다 잠결이기까지 하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넘어갔던 것이다. 머리가 짧다거나, 가슴이 없다거나, 상당히 말랐다던가 그런 것들... 게다가, 하필이면 그래의 술버릇 중 하나가 취해서 잠들면 옷을 다 벗어던지는 것이었다. 

관웅도 그래도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서로를 더듬고 만져지고 하다가 마침내 엎치락 뒤치락하며 몸이 엉키기 시작했다. 그래는 잠에 취해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도 관웅의 키스를 다 받아주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입만 열고 있었다는 것이 맞을까? 관웅은 유부남 N년차 답게 키스를 능숙하게 잘 했다. 
관웅은 관웅대로, 한동안 육아며 살림이며 하는 문제들 때문에 섹스리스였는데 간만에 거사를 치룬다고 생각하니 잔뜩 흥분된 상태였다. 술땜에 아직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벗은 몸의 주인에게 한껏 봉사하며 착실히 본능대로 육체를 움직였다. 

문제는 성난 기차가 터널로 들어간 직후였다. 부드러운 애무에 취해 관웅이 인도하는 대로 얌전히 다리까지 벌리며 자신의 몸 위로 올라타는 상대를 받아주던 그래였지만,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 두 다리 사이에서부터 척추를 가르며 올라오는데 저절로 두 눈이 번쩍 뜨이고 "아, 아파아!" 하는 비명이 나온 것이다. 
그제서야 천과장은 반쯤 감고있던 눈을 확 떴다. 그래는 고통에 다시 눈을 감은 뒤 뜰 생각같은 건 하지 못하고, 잔뜩 찡그린 채 눈꼬리에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 아파요, 그만, 그만....." 

"자, 장그래?????" 

"아파요...아파..." 


관웅은 너무 당황해서 안구가 쏟아지고 허파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지금, 여기, 분명, 자신의 두 팔 아래 누워있고, 자신의 상체에 몸이 깔려있으며, 자신에게 다리를 벌려준 채, 제 몸 안으로 관웅의 일부를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은, 관웅이 근무하고 있는 종합상사 원 인터내셔널의 영업3팀 계약직이자 막내 사원인 장/그/래였다. 관웅은 이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굳힌 채 눈만 부릅 뜨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장그래도 피차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꿈 속에서 불상의 인물(장그래 멋대로 금발 미녀로 추측)로부터 온 몸을 부드럽게 애무당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찢어지고 꿰뚫리는 고통이 느껴졌으니 그야말로 누워있다 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그래는 아직도 많이 취해있었고 비몽사몽에 가까워 고통을 좀 덜 느낀다는 것이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침묵의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말 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 머리가 훨씬 복잡한 쪽은 관웅이었다. 

관웅은 유부남이었다. 유부남인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있었다. 게다가 지금 자기 밑에 깔려있는 건 부하 직원이다. 그냥 부하직원이 아니라 직급이 몇 개는 차이난다. 나이는 거의 띠동갑에 가깝다. 누가 봐도 관웅의 잘못이다. 관웅은 불륜을 저질렀다. 하룻밤의 실수니 뭐니 해도 불륜은 불륜이었다. 그것도 남자와! 아니, 저질'렀'다가 아니다. 저지르는 '중'이었다. 현재 진행형이었던 것이다!!! 


"......자, 장그래 씨." 


그래는 어질한 머리로 지금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려 애썼다.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 왠지 엄격하게 느껴지는 말투. 아빠가 생각나기도 한다. 누구지...누구더라..... 관웅은 정신 못차리는 그래의 얼굴을 몇 번 두들겨 보았다. 그러나 그래의 상태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관웅이 움직이지 않으니 고통도 덜 느껴지는 듯, 그래는 여전히 관웅의 목을 끌어안은 채 풀린 혀로 "누..구...?"하고 되물을 뿐이었다. 

관웅은 자신이 여기서 더 당황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이 놀라움은 시작일 뿐이었다. 

우선 지금 관웅은, 이 해괴망칙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신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에 경악했다. 보통 이런 일이 있다면, 상대가 누군지 깨닫자마자 온종일 땡볕 내리쬐는 처마 밑 무말랭이모냥 확 하고 쭈그러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관웅의 것은 간만에 눈을 떠서 그런지 보통 의기양양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같은 팀 부하, 나이차이는 10세 이상, 게다가 같은 남자임을 안 후에도 줄어들긴 커녕 당당하게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미친!!! 

관웅은 얼핏 알고 있었다. 장그래가 예쁘다는 것을. 곱게 생긴 얼굴이라는 것을. 


그러나 품 넉넉한 어두운 색깔의 양복과 딱딱한 넥타이로 그런 생각들은 다 가려버리고 있었다. 장그래는 그냥 기특한 구석이 있는 계약직 사원이었다. 막내 중에서도 막내같은 '우리 애'였다. 너무 마른 몸 때문에 정장 품이 남아돌 때는 보약이라도 먹이고 싶다는 삼촌의 마음이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관웅의 두 팔 아래에 있는 그래는 달랐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예쁜 이마 위로 흩어져 있다. 얼굴에는 어느새 땀이 송글 맺혀있고, 자신의 목에 엉켜있는 가늘고 흰 팔은 몹시 야하게 느껴진다. 그래는 천천히 눈을 뜨고 천과장을 올려보았다. 관웅의 심장이 갑자기 쿵 하고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없이 투명한 밤색의 눈동자가 자길 올려보고 있었다. 속눈썹은 한가닥 한가닥씩 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통통한 입술은 잔뜩 붉어져,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조금씩 움직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의 입술이 아까 키스했을 때 묻은 타액 때문에 반들거렸다. 


'안 돼. 안 돼, 제발 인간으로 남아있자, 천관웅!' 


관웅은 맘 속으로 외쳤다. 제발. 신이여, 거기 계시다면 앞으로 몇 년 더 섹스리스 해도 좋으니까 제발 이 아들놈 좀 죽여주세요! 앞으로는 가사도 육아도 진짜 열과 성을 다해 함께 하겠습니다. 돈 벌어온다는 핑계로 마누라 고생시키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절대로 다른 여자한테 눈 돌리지 않고 완전 집돌이 애처가 되겠습니다! 신이여 제발!!! 


-그러나 관웅의 신은 그 시간, 오차장네 집에 가 있었다. '신이여, 제발 힘을 주소서! 오늘 정기방어전 성공적으로 치뤄야 합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오차장(43세/기혼/자녀3남)의 곁에 말이다- 


그래는 지금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얼굴을 들고 바짝 가져다 댔다. 두 사람의 코가 닿을 뻔 하자 천과장이 멈칫 하며 몸을 뒤로 물렸고, 덕분에 아랫쪽은 좀 더 가까이 맞물리게 되었다. 그래는 미간을 찡그리고 관웅의 입술 바로 앞에서 "아파요..."하고 소근거렸다. 관웅은 거의 한계였다. 진짜, 진짜 거의 한계였다. 관웅은 정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자신의 허리를 그래로부터 떨어트렸다. 방금까지 따뜻한 그래의 몸 안에 담겨있던 성난 관웅의 분신이 조금씩 다시 세상 공기를 맛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들어오고 나가고는 그래에게 큰 차이가 없었다. 처녀인 그래에게, 두 움직임 다 피차 고통이었다. 오히려 뜨겁고 젖어있던 관웅이 물러가는 느낌은 소름까지 끼쳤다. 그래는 잔뜩 움츠리며 관웅의 목을 꼭 끌어안고 매달렸다. 하아 하아, 붉은 입술로 밭게 쉬는 숨에는 그래가 느끼는 감각이 다 새겨져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뾰족한 번개처럼 관웅의 귓 속을 파고들었다. 관웅이 기껏 몸을 물리는데도 그래가 매달리며 따라오니 상황이 난처했다. 게다가 그래는 어느새 슬그머니 관웅의 몸 위로 자신의 다리를 들어올려 끌어안고 있었다. 


"아....아파요.....살살...." 

"...장그래, 너 내가 누군줄 알아?" 


관웅은 술이 덜 깬 것 같은 그래를 보며 마지막 체념의 질문을 던졌다. 

장그래, 제발. 정신 차려서 날 발로 차고 비명을 지르고 주먹으로 때리란 말이다. 


".......장...님" 

"응? 내가 누군지 아냐고....." 

"과장님, 과장님....." 


그래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관웅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관웅의 목에 얼굴을 파묻은 그래는 계속 속삭였다. 


과장님, 관웅 과장님. 

천관웅 과장님. 

좋아해요. 

좋아해요....... 





관웅의 이성은 거기서 끊겼다. 









 



그랬던 것이 불과 두 달 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오로지 눈 앞의 상대가 누구인지만 인식하고, 둘 다 정줄을 놔버린 채 엉망으로 뒹굴었던 것이 두 달 전. 아침에 일어나서 함께 몸을 씻고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며, 오늘 일은 서로 잊자고 얘기했던 것이 두 달 전. 그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고, 관웅은 그런 그래를 끌어안고 한번 더 깊게 키스해주었다.

어리석은 소녀처럼 관웅의 목에 매달려 눈물 흘리는 그래를 보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던 관웅.
너무나 어처구니 없이 들켜서는 안될, 영원히 숨겨야 했던 마음을 꺼내버린 지난 밤의 두 사람.

관웅은 반듯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그래보다 먼저 모텔 방을 나섰다.
그런 관웅을 보고 침대에 엎드려 한참이나 엉엉 울었던 장그래.

사랑하자 마자 이별이었던 두 사람의 하룻밤이 두 달 전.


그 날 이후로, 두 사람은 다시 평범한 상사와 부하로 돌아왔다. 둘 중 누구도 '그 밤'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으며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관웅은 더 좋은 남편이, 더 좋은 아빠가 되었으나 여전히 섹스리스였고 그래는 석율의 장난어린 대쉬를 받으며 철벽을 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전과 같았다. 아무 것도 바뀐 것은 없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출장을 가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 두 사람이 다시, 한 침대에서 홀랑 벗은 채로 발견된 것인가???

그건 다음 번에 얘기하도록 하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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