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웅그래/천그래] 배덕 (리핏님 리퀘)

ㄴ미생 기타 2015. 5. 1. 08:38






[배덕]






처음부터 애정같은 것은 요만큼도 없었다. 돈 때문에 했던 결혼이었다. 관웅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녀는 관웅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대가로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주었다. 그녀 또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녀는 감히 사랑을 바라지는 않았다. 잘생기고 젊은 남편을 옆에 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을 원하는 존재인지라....

그녀는 결국 관웅의 사랑을 갈구하고 말았다. 하지만 관웅은 계약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단칼에 거절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번 입양이 그녀에게 얼마나 절실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폐경으로 아이가 생길 수 없는 자신의 태에는 미련을 버리고, 어느 귀엽고 머리좋아 보이는 꼬마를 데려왔다. 관웅을 알아보던 눈이니 어련히 좋은 아이를 골랐을까. '장그래'라는 이름의 여덟 살 꼬마는 그렇게 부부의 아들로 정식 입양되었다. 관웅은 허망한 그녀의 소망을 굳이 부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의 재산 중 상당부분도 이미 관웅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소꿉놀이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세요, 부인. 관웅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늙은 아내의 발버둥을 지켜보았다. 자녀가 있는 가정을 이룸으로써, 한 아이의 엄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그렇게라도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관웅은 그녀에게 사랑을 줄 수는 없었지만 연극에 동참해줄 수는 있었다. 최소한 좋은 아빠 흉내 정도라면.


그러나, 관웅의 이 모든 생각은 장그래를 처음 보는 순간 산산히 부숴지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아빠라고 해야지, 그래야."


"아...안녕하세요, 아빠. 저는 장그래입니다."


"그래, 아주 잘 했다 그래야."



그녀는 장그래의 어머니라기보다 할머니같아 보였다. 그래서 더 그 광경은 괴이했다. 아이는 쭈뼛거리며 새로운 '엄마'의 품 안에서 망설이다가, 관웅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그를 꼬옥 끌어안았다. 관웅은 놀라 몸을 움찔 했다. 그래는 관웅의 큰 키 때문에 한없이 올려다보며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앞으로 착한 아이가 될게요."



관웅은 그 말을 듣고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아직 8살밖에 되지 않은 이 아이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어왔고 거기에 익숙해졌는지. 장그래의 눈망울은 초롱했다. 투명한 갈색의 눈동자는 아름다웠다. 관웅의 잔잔한 마음 속에 누군가가 돌을 던진 것만 같았다. 가슴 속에서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50대 중반의 엄마. 30대 초반의 아빠. 8살의 장그래.


이것이 가족의 시작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입양되었을 때 갓 초등학교에 들어갔던 그래는 어느새 중학생이 되어있었다. 그래의 삶은 평온했고, 만족스러웠다. 남들과 다소 다른 엄마 아빠가 있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던 고아원에서, 새로운 부부가 올 때마다 날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거나, 선택되어 고아원을 떠날 수 있게 된 친구를 부러워하던 그 시절에 비하면....


그래의 '엄마'는 이제 60세가 되었다. 그래의 '아빠'는 37세였다. 그리고 장그래는 13살이었다.


그래가 볼 때, 아빠는 별로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는 항상 아빠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래가 어렸을 때는 이 가족의 어디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좋은 집에서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그래도 알게 되었다. 세 식구가 밖으로 나가면 모두가 자신들을 쳐다본다는 것을. 그 시선은 기분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는 그런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살피며 재단하는 그런 눈빛. 그래서 그래는 외출해도 항상 일찍 들어가고 싶다고 엄마와 아빠를 졸랐다. 남들이 엄마와 아빠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게 싫었다.


13살의 장그래는 사춘기였다. 그러나 워낙 조용하고 말이 없던 그래는 혼자 조용히 그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남보다 특이한 부모 밑에서 일찌감치 애어른이 돼버린 그래는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걱정 끼치길 싫어했다. 특히 나이든 엄마를 걱정시키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는 이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부모들이 어떤 관계인지. 오랜 기간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온 엄마가 불쌍했다. 그렇다고 관웅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의 눈에는 항상 관웅의 사랑을 갈구하는 나이든 엄마가, 어쩐지 자신이랑 겹쳐 보이는 것이었다.






그 날은 엄마가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관웅은 모처럼 기분전환하라며 그녀를 차로 데려다주었다. 그런 관웅의 모습에 엄마는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친구들 앞에서 젊고 잘생긴 남편을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또한 엄마의 밝은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엄마의 친구들은 관웅과 그래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보고 저희끼리 한참을 꺄르륵거리며 여고생처럼 웃었다. 그녀는 환히 웃으며 두 사람을 떠났다. 나이 든 아내도, 젊은 남편도, 어린 아들도, 모두 행복한 주말 아침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관웅과 그래는 차를 주차시켰다. 잠깐 차 안에 침묵이 흘렀다. 평소와는 달리 뭔가 긴장감이 떠도는 공기에 그래는 슬며시 관웅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엄마를 배웅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뭐지. 뭘까. 관웅은 한 번도 그래에게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다. 관웅은 그래에게 좋은 아빠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분위기가 더욱 낯설고 어색한 것이었다. 잠시간의 침묵 뒤, 관웅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너....자위 하니?"


"ㄴ, 네??"



그래는 놀란 사슴처럼 눈을 뜨고 관웅을 쳐다보았다. 아차 싶었다. 최근 그래는, 몇 개월 전 첫 몽정을 겪은 후 그 은밀한 쾌감에 가끔씩 포르노물을 보며 자위를 하고는 했다. 물론 내성적인 그래답게 철저히 숨기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관웅에게 들키고 만 모양이었다. 그래도 엄마에게 들킨 것 보단 나았지만 젊은 아버지에게 들키는 것도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관웅이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까지 착하고 순진한 척 해왔는데, 알고 보니 발랑 까졌다고 비난하지 않을까. 그래의 머릿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그 동안 관웅은 인내심 있게 그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는 망설이다가 결국 사실대로 실토하고 말았다.



"......네. 죄송합니다."


"아냐, 죄송할 것 없어."


"...."


"그 나이 땐 그런 거지. 엄마한텐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라."


"네......아빠."



그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왠지 부끄러워서 관웅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항상 관웅 앞에서 착하고 좋은 아이이고 싶었는데. 그래는 사랑받지 못하는 엄마를 오랫동안 지켜봐와서 그런지, 자신만은 관웅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본능적인 방어기제인지도 몰랐다. 자신의 아내에게조차 사랑을 주지 않는 관웅을 보며, 자신도 사랑받지 못하면 언제 파양당할지 모른다는. 필사적인 마음이었다.


관웅은 담배를 꺼내며 그래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말했다. 그래는 아무 말 없이 안전벨트를 풀고 차 문을 열고 나갔다. 그래의 어깨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관웅에게 '나쁜 짓'을 들켰다는 생각에 그래는 자기 자신이 죽을 만큼 미워지고 있었다.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자, 그래는 후다닥 집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관웅은 차 안에서 담배를 피며 그런 그래의 뒷모습을 끝까지 보고 있었다.





그날 그래는 한 번도 관웅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다 저녁식사 시간에만 식탁으로 나왔을 뿐이다. 식사 시간에도 그래는 관웅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먹는둥 마는둥, 젓가락으로 밥공기를 뒤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관웅은 그런 그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래는 자신에게 와서 꽂히는 관웅의 시선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역시 내게 화가난 거야. 내가 그런 짓을 해서...'



그래의 가슴이 돌로 눌러놓은듯 답답했다. 관웅이 그래에게 "밥맛이 없니?"라고 물었지만, 그래는 급히 고개를 들고 웃으며 "아니에요."라고 대답하고는 앞에 놓인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관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그래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는 재빨리 밥공기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래도 관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의 가슴이 따끔따끔했다.


결국, 먹은 것이 얹힌 그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서 변기를 붙잡고 먹은 음식을 다 쏟아내야 했다. 탈진한 그래는 다른 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방의 불을 끈 뒤 무거운 몸을 침대에 쓰러지듯 뉘이고, 한참을 엎드린 채 있다가 꼬물거리며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제대로 누웠다. 사방이 온통 어둠이었다. 그래서 그래는 더욱 관웅의 얼굴을 잘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너 자위 하니?'



그 말을 할 때 관웅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더라. 관웅은 어떻게 자신이 자위를 한다는 걸 알게 된 걸까. 정말 아무도 모르게, 그토록 조심했는데. 행위 자체도 부끄럽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에게 그런 모습이 보여졌다는 사실이 더 부끄러웠다. 특히 그것이 관웅이어서 더욱. 그래는 이제 관웅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었지만, 그래는 정말로 그랬다. 정말 착하고 좋은 아들이고 싶었는데.


그래는 온갖 생각들을 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어둡고 조용한 집안. 관웅과 그래 단 둘이 있기에는 너무 큰 집. 그 속의 자신만의 공간인 작은 침대 위에 누워서 곤히 자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래의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관웅은 잠시 문을 연 채 침대 위에 잠들어있는 그래를 바라보았다. 천사와 같은 얼굴이다. 아직 한없이 앳되어 보이기도 하고, 나이답지 않은 색기가 엿보이기도 하는 그런 묘한 얼굴이다. 관웅은 한걸음씩 천천히 그래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래가 누워있는 침대에 살며시 걸터앉았다. 그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관웅은 늘 생각했다. 장그래가 커가면서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더이상 이 가족을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 나이든 아내는 더욱 빠르게 늙어갈 것이고, 장그래는 꽃처럼 피어나게 될 거라고. 그러면 더이상 관웅도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없을 거라고. 지난 5년간 은밀하게 품어왔던 마음이었다. 이런 관웅의 마음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관웅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래가 꽃봉오리를 맺기까지 기다려왔다. 피어나기 직전의 한없이 약한 꽃봉오리. 그러면서도 한없이 아름다운.


관웅은 조용히 한 손을 내밀어 그래의 얼굴을 감쌌다. 희고 말랑한 그 뺨을 쓰다듬어본다. 곱게 감긴 눈동자는 그 모양마저 은은한 색기가 감돈다. 관웅은 엄지로 그래의 눈썹과 눈두덩을 부드럽게 쓸어보았다. 익숙한 체취와 따뜻한 손길에 그래가 눈을 떴다. 그래는 관웅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어쩐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관웅도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말 대신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이마에 덮인 그래의 머리칼을 치워내고, 그 위에 키스했다. 이마에 입술이 닿은 후에도 관웅은 한참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래는 관웅의 입술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그대로 받고 있었다. 관웅은 다정하게 그래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입술을 떼었다. 그래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관웅은 손가락으로 그래의 얼굴을 더듬었다. 부드럽게. 그의 손이 그래의 입술을 쓸어본다. 통통하고 예쁜, 그 붉은 입술을.


그래의 눈에 가득 고였던 눈물이 얼굴 옆으로 떨어졌다. 관웅은 그 눈물도 엄지손으로 닦아주었다. 그래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주세요."



관웅은 잠시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곧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고, 입가에는 조금 미소를 띄웠다. 자신은 항상 장그래를 사랑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그래는 자신의 사랑을 갈구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는 넘치도록 사랑을 줄 것이다. 장그래가 거부한다 해도. 


하지만 그래 또한 관웅의 사랑을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이 집에 들어온 이후, 그래는 항상 관웅의 사랑을 갈구해왔다. 관웅의 부인인 자신의 엄마보다 더. 그래는 늘 관웅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자신만 사랑해주길 바랐다. 그래는 관웅이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서 좋았다.


관웅은 그래를 향해 천천히 상체를 숙이고, 그래의 두 뺨을 가볍게 붙잡은 뒤, 그 입술에 두어 번 짧게 키스했다. 그래는 눈을 감은 채 키스를 받은 후 다시 눈을 뜨고 관웅의 눈빛을 마주보았다. 관웅의 눈에도, 그래의 눈에도 후회는 없었다. 오로지 욕망만이 가득 차 있었다.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서로를 향한 욕망들이.


관웅은 고개를 기울여 그래의 입술에 깊게 키스했다. 그래는 밀고 들어오는 관웅의 혀에 입을 열어 그를 받아들였다. 농염한 키스였다. 부드러운 혀끼리 맞대고 핥는 느낌에 머리가 아찔했다. 입술을 떼고, 관웅은 그래를 보며 천천히 자신의 상의를 벗었다. 관웅의 탄탄한 몸이 드러났다. 어른의 몸이었다.


관웅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두 사람의 상체를 맞닿게 했다. 그래의 얇은 잠옷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심장이 쿵쿵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관웅의 목을 끌어안고, 두 다리로 관웅의 몸을 얽었다. 관웅은 그래의 턱과 뺨과 귀에, 그리고 눈에 키스했다. 그래의 위로 관웅의 키스가 비처럼 내렸다.


마지막으로 그래는 생각했다. 관웅의 애무에 잠식되어가며, 어린 그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내 것이라고. 날 사랑하고 있다고.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그가 지금 날 사랑해주고 있다고.


앞으로 긴 밤이, 수많은 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웅은 생각했다. 자신은 오늘밤 꽃을 얻었다고.


영원히 시들지 않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담은, 



배덕이라는 이름의 꽃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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