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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웅그래/그래른] 기생집 썅년 준식 & 애기 기생 장그래 썰 ① (7/22)

ㄴ미생 기타 2015. 7. 23. 23:31


조선시대 (나름 탑클라스) 기생집 설정으로. 즐겨찾는 나으리들과 기생집 썅년 준식, 이제 갓 들어온 애기 기생 장그래. 장안 최고급 기생집에서 제일 잘나가는 에이스 준식은 어느날 신참을 받게 되는데 이름이 장그래라 하였으니.


몰락한 양반 뭐 이정도는 아니더라도 꽤 잘 살았던 장사꾼의 외아들이었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빚쟁이 쳐들어오고 어머니는 몸져눕고 이런 코스로 자연히 기생집에 팔려오게 된 것. 외모가 워낙 탁월해서 깨끗한 몸으로 여기까지 오게 됨.


그런 그래를 보는 준식은 처음부터 단단히 맘에 들지 않음. 자기는 아주 밑바닥부터 구르고 굴러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저게 뭐라고 집안 쫄딱 망하고도 여기까지 발에 먼지 하나 안 묻히고 왔담? 성준식 썅년모드 발동. (원래 썅년...


그래는 천성이 순하고 속으로 잘 참는 아이였음. 준식은 젊음도 가지고 얼굴도 예쁜 그래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음. 자기는 고생하느라 이쁘고 어린 시절 다 지났는데...물론 난 지금도 인기 많지만! 물론 난 지금도 예쁘지만! 이런게 준식의 기본 마인드.


이 기생집은 워낙 클라쓰가 남달라 고관대작들이 오는 곳으로 유명했음. 기생들 얼굴도 좋고 밀담 나누기도 좋고. 자주 오는 무리들은 최영후 영의정과 그의 무리들. 김부련 우찬성, 오상식 판서, 천관웅 대사헌... 아무튼 현 정권 실세들이 들락날락.


하루는 최 영의정 계파이자 한양 기생집은 꽉 잡고있다는 한석율 도사가 찾아옴.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는, 요즘으로 치면 새끼마담 역할을 하는 김동식. 원래 한석율은 성준식이 전담하고 있었음. 한석율이 성준식을 찾으면 성준식이 앙칼지게 튕기는 식.


그 날도 동식은 한도사 왔다고 성준식을 호출했는데, 준식은 그 날 따라 달거리땜에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음. 아 한도사 저 귀찮은 새끼. 맨날 싫다는데도 왜 찾아오고 난리야. 무슨 뜻인진 모르지만 소시오패스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뭐 이러는 것임.


그래서 평소에는 일부러 그래한테 자리도 안 내주고 자기가 들어가고 이랬던 것을, 일부러 자기 찾는 한도사를 그래의 방에 들여보냄. 준식의 방에 들어갈줄로만 알고 있던 석율은 동식이 안내하는 방 앞에서 "아니 이보게 여긴 어딘가?" 어리둥절행.


동식은 조금 난처해하지만 말빨 세워가며 오늘 준식이가 몸이 안 좋다, 달손님 오셨으니 앙탈도 더할 것, 준식이 성깔 아시지 않느냐... 얘는 새로 온 푸릇푸릇한 앤데 얼굴이 아주 예쁘니 도사님도 좋아하실거라고 한보따리 푸는 것.


한편 그래와 나름 지내보며 성정을 파악한 준식은 그래가 한도사같은 성격 질색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음. 이걸로 귀찮은 한도사도 떠넘기고, 그래도 손님한테 밉보이고 일타 이피!!! 하며 기분좋아하는 준식. 역시 ㅆㄴ...


암튼 석율은 애기방이라고 하니 어떤 애긴지 보자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감. 들어가는 순간 뭔가 발광체가 있는지 아주 눈이 부셔오는 석율. 그 정체는 혼자 오도카니 청승맞게 앉아있는 장그래의 얼굴이었음. 얼굴이 어찌나 흰지, 입술이 어찌나 빨간지.


"오오! 애기야 네 잃어버린 오라버니가 이제야 왔다." 처음부터 넉살을 피우며 그래 앞에 앉는 한석율. 그래는 점점 심해지는 준식의 구박때문에, 그리고 차도를 알 수 없는 어머니땜에 맘이 속상하던 참이었음. 그래가 침체된걸 단박에 눈치채는 석율.


"우리 이쁜 애기는 뭐 안 좋은 일이 있나?" 그 말에 내리깔았던 눈을 올려 석율의 얼굴을 보는 그래. 호색한으로 소문난 것 만큼이나 잘생긴 얼굴로도 소문난 한도사. 눈썹도 바르고 쌍꺼풀도 짙고 코도 길고 잘 생긴 사내가 그래 앞에 앉아있음.


"아, 아니옵니다. 전 그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그래. 태어나서 이렇게 잘 생긴 사람은 처음 봤다고 생각함. 평소 여자같이 예쁘장한 자기 외모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래는 그야말로 '미남'인 석율을 보고 일종의 충격을 받은 것.


아무튼 석율은 특유의 말재간을 발휘하며 손짓까지 거들어 그래를 기쁘게 해줌. 그래도 우울했다가 높으신 나으리가 저렇게까지 자길 위로해주니 나중엔 비실 웃음이 나오고. "웃으니까 예쁘네." 그래가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는 걸 본 석율이 그렇게 말해줌.


조금 분위기 미묘해지는 두 사람. 석율은 오늘 그저 준식 데리고 수다나 떨어볼까 하고 온건데 뜻밖의 진주를 발견했다고 생각함. 매너도 좋게 그래를 건드리지도 않고 그래의 방을 나오는 석율. 동식이 어떠셨냐고 조르르 좇아와 한도사에게 물음.


석율은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고, 동식은 신나서 사실 저 아이가 아직 아무의 손도 타지 않았다고, 어떤 나으리가 머리를 올려주실지 사뭇 궁금하다고 하며 일부러 석율을 자극함. 기방에 '새 애기', 즉 처녀가 들어올 경우 비싼 돈을 주고 사는 것이 관례.


석율은 그래가 처녀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람. 저렇게 예쁜 애가? 한편으로는 그 말을 듣자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석율. 과거를 좋은 성적으로 붙고 도사까지 올라온 석율은 줄을 대고 더 빨리 출세하고 싶었음. 그러나 아직 영전은 까마득.


자신과 동기인 장백기 도사, 안영이 도사가 있었으나 장원을 차지했던 안 도사가 아무래도 빨리 영전할 것처럼 보였음. 점점 초조해지던 찰나, 기방에서 저런 보물을 발견한 것. 석율은 궁중 최고 실세인 최 영의정의 사람들에게 접대를 하기로 맘 먹음.


최 영의정 직속은 김부련 우찬성이었으나 아직 도사인 석율의 급에 우찬성을 모실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 아래 있는 오상식 판서와 천관웅 대사헌을 모셔보기로 함. 기방에 큰 돈을 주고 그래의 첫날밤을 오 판서에게 올리려는 것.


석율은 내 조만간 높으신 나으리들을 모시고 올테니, 그 때까지 저 아이를 아무에게도 보이지 말라 신신당부하고 큰 돈을 미리 내어놓음. 반색을 하며 알겠습니다 나으리, 하는 동식. 역시 기방 최고 영업왕 동식이었음. 한도사가 가고 준식이 얼굴을 내밈.


"야, 뭐냐?" "어 오늘 한 건 올렸다 야. 조만간 높으신 분들 오신댄다." 묵직한 은화 꾸러미를 짤랑거리는 동식. "장그래 때문에?" 준식이 그래로 인해 심기가 불편한 걸 알고 있던 동식은 잠시 멈칫 함. "어...겸사겸사지 뭐."


준식은 화가나서 그날 저녁 더욱 그래를 구박함. 온 기방 마루 구석구석 물걸레질을 해야 하는 그래. 준식은 그래도 석율이 그래에게 빠지거나 한게 아니라 은근 다행으로 생각함. 평소엔 한도사를 개 닭보듯 하는 준식이었는데 이게 뭔 바람일까나?


암튼 그렇게 한 주, 두 주 하고도 사흘이 더 되어서야 한도사의 종을 통해 연락이 옴. 내일 저녁 나으리들을 뫼시고 올 터이니 준비를 잘 하고 있으라고. 큰 자리이기 때문에 기방의 내로라하는 기녀들 총출동. 당연히 준식도, 그래도 있음.


석율은 특별히 그래를 오 판서 옆에 앉혀놓으라고 당부. 준식은 당연히 가장 높은 분을 자기가 뫼시어야 하는데 장그래가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펄펄 날뜀. 준식을 달래느라 아주 혼이 빠지는 기방 사람들. 어쨌거나 기방 에이스(?)는 준식이었기에.


결국 그래는 준식에게 따귀까지 맞음. 흰 얼굴에 벌겋게 손자국 나서 멍하니 뺨 쥐고 있는 그래. "야 너 진짜 왜그래~!" 동식이 씩씩거리는 준식을 말림. 그래의 입 끝이 조금 찢어졌음. "아 내일 나리들 오시는데 얼굴 망가트려놓으면 어떡해~!"


결국 동식도 짜증을 내고 마는데, "흥!"하고 모르는 척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준식. "어후 저거저걸 그냥~~" 동식은 한숨을 쉬다 그래를 챙김. "너..얼굴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아보였음. 결국 치료받고 약 바르는데.


다음날, 오 판서와 천 대사헌을 모시고 기방에 온 석율. "나으리 어서오십시오." 복도부터 쫙 서있다 인사를 하는 기생들. 오 판서는 "어 그래 허허허"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고 뒤따르는 천 대사헌은 묵묵. 나으리들이 착석하고, 그 곁에 앉는 기생들.


준식은 전에도 한 번 오 판서를 모신 적이 있었음. 요란하게 아는체를 하며 아양을 떠는 준식. 그러다 그래를 끌고 와서 "이 아이는 새로 들어온 아이인데 좀 멍청하긴 하지만 말을 잘 들으니 나으리 맘에 드실 것이옵니다."라고 소개함.


그리고 자신은 천 대사헌 옆에 앉는 준식. 이왕 이렇게 된 거, 늙은(?) 오판서는 장그래한테 맡기고 자기는 잘생긴 새 나으리하고 재미나 봐야겠다! 이러고 있는 거. 석율은 오늘 온 사람들 중 위계로는 젤 쩌리라 그래도 준식도 차지하지 못함.


오 판서가 상석에 앉고, 천 대사헌과 마주앉은 석율. 기생들의 화려한 연회가 펼쳐지고. 석율도 옆에 한 명 끼고 술을 마시긴 하는데 영 눈 앞의 그래와 준식 때문에 집중이 안 되는 것. 마치 구여친과 현여친을 한꺼번에 빼앗긴 듯한 기분.


어쨌든 로비를 해야하긴 하니 열심히 오 판서와 천 대사헌의 비위를 맞춰주는 석율. 그 와중에 준식은 잘생긴 관웅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 찰싹 달라붙어 오호홍 거리면서 난리가 났음. 맞은편에서 눈쌀이 찌푸려지는 석율. 그러나 정작 천관웅은 돌부처상.


오상식 판서는 또 그 나름대로 "이녀석 보게! 글쎄 바둑을 둘 줄 안다지 뭔가!" 하며 그래를 칭찬하기 여념이 없음. 하 하 하 참 영특하네요,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지만 오 판서 품에 안긴 그래를 보는 마음 또한 편치 않음. 한 도사 고난의 날...


암튼 진탕 놀고 만족한 나으리들, 드디어 밤이 깊어 오 판서가 그래의 어깨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궁에서 온 파발마. 최 영의정이 오 판서를 급히 호출하였다 하는 것. 상식은 기생이고 뭐고 당장 입궐해야 한다며 후다닥 나가버리고.


순식간에 남게 된 관웅과 석율. 석율은 당황했음. 바로 장그래가 오늘 접대의 핵심이었는데...!! 그 때 아직 천 대사헌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미침. 꿩 대신 닭이라고, 대사헌께 그래를 넣어볼까. 한편 관웅은 준식이 술을 너무 먹여 어지럽던 차였음.


관웅은 잠을 자게 방을 하나 내달라고 청하고, 그 말을 다른 쪽으로 알아들은 석율과 동식은 허겁지겁 그래를 관웅의 방으로 밀어넣음. 이번에도 또 자기 자리를 빼앗기게 돼서 승질이 날대로 난 준식. 동식은 그래를 붙잡고 잘 모셔야 한다 당부 중.


그래는 어차피 이런 날이 오겠다 싶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얼굴을 한 번이라도 튼 사람-예를 들자면 석율-과 하고 싶었음. 날 구해달라는 눈빛으로 석율을 쳐다보는 그래. 석율도 아련함이 가득한 그래 눈빛을 보니까 뭔가 맘이 흔들림.


그리고 눈치 빠른 준식은 둘의 눈빛이 심상찮음을 알고, 평소에는 튕기기만 하고 제대로 대해주지도 않던 석율에게 팔짱을 딱 낌. "나으리, 오늘은 제가 뫼시겠사옵니다." "어...어? 어??" 엉겹결에 준식에게 질질 끌려가는 석율. 물끄러미 보는 그래.


결국 그래는 관웅이 든 방으로 들어가야 했음. 그러나 불안한 마음으로 들어가 보니, 이미 관웅은 펴놓은 비단 이부자리 위에 대자로 뻗어 자고 있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는 그래. 그냥 나오면 동식에게 야단맞을 테고, 그렇다고 깨울 수도 없고.


결국 방 구석탱이에 앉아 관웅을 지켜보던 그래는 어느새 잠이 들고 마는데. 다음 날 아침, 관웅이 일어나 보니 어제의 그 애기 기생이 저쪽 구석에서 쭈그리고 자고 있는 거라. 안 그래도 앳돼보이는 얼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이불 위로 옮겨주는 관웅.


그렇게 방을 슬쩍 나오는데, 마침 또 복도에서 준식의 방에서 나오던 석율과 마주침. "아, 대사헌 나리, 간밤 잘 보내셨습니까?" 석율은 얼마나 시달렸는지 피곤함이 잔뜩 배인 얼굴로 관웅에게 물음. '밤새 뭘 했길래 저리 쪽 빨린 얼굴이 되었누.'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는 관웅. 간밤 석율은 모처럼 질투심이 타오르는 준식의 손에 붙들려 평소라면 감히 해보지도 못했을 온갖 것들을 해버린 것임. 오죽하면 정력가로 소문난 석율이 정기를 빨린 얼굴이 되었겠는가.


아무튼 석율에겐 나름 흡족한 밤이었음. 맨날 틱틱대고 얼굴만 맞대면 으르렁거리던 준식이 예상 외의 화끈한 밤을 선사해 주었으니. 저도 모르게 씨익 웃는 석율. "??"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웅은 그저 '이 도사 참 모를 사람이로군' 같은 생각만..


석율도 곧 정신차리고, 관웅에게 그 아인 어떠셨냐고 묻기 시작하지만 관웅은 대충 대답하며 질문을 넘겨버림. 표정이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에 석율은 제멋대로 이 나으리가 수줍어 하시는구나, 넘겨짚고 그래와 밤을 보낸 것으로 생각해버림.


관웅은 뭔가 마지막으로 동식에게 말하려는 것 같다가, 곧 거두고 "나는 이제 돌아가야겠네" 하면서 기방을 나감. 황급히 따라 모시려는 석율. 그러나 등 뒤에서 기척이 나 뒤돌아보니, 어느새 그래가 방에서 나와 있었음. 석율을 바라보는 그래.


석율은 자신의 풀어진 옷가지며 머리 등을 눈치채고 머쓱해져 "하하..우리 애기 깼니?"라고 어색하게 그래에게 말을 건넴. 그래는 그런 석율을 한참 바라보다가 "네. 나으리는 '좋은 향기'가 나시네요."라고 말함. 옆에서 깜짝 놀라는 동식.


그래는 간밤 자길 관웅에게 바치고 준식과 보낸 석율을 질타하고 있었던 것. 아니 얘가 지금 손님께 무슨 말을...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동식. 가까이 석율이 묵었던 방이 있었기에, 담배 한 대 피며 이 모든 대화를 들으며 웃고있는 준식.


석율은 그래도 조금 그래에게 미안함이 있었는지, "아...애기야, 오라버니까 또 놀러오마. 오늘은 바빠 이제 가보아야겠다." 하면서 그래의 말랑한 뺨을 살짝 꼬집고, 석율 특유의 눈꼬리가 휘어지고 보조개가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기방 밖으로 퇴장.


그리고 동식과 고개 숙인 그래 사이에 흐르는 침묵. 동식은 화가난 듯 했음. 그래에게 뭐라고 하려 입을 떼는 순간, 방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긴 담뱃대를 입에 문 준식이 속곳 차림으로 나옴. 순식간에 준식에게 시선이 쏠린 두 사람. 준식은 웃고 있었음.


"아주 놀구 있다, 놀구 있어." 그래의 곁에서 비웃는 표정으로 알짱거리다 그 얼굴에 후우--하고 담배연기를 내뿜는 준식.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래는 캘룩거림. "대사가 아주 절절해? 지금 뭐 연애 하냐 너네?" 그래를 내려다보며 풉 웃는 준식.


"야 이 멍청아. 쟤는 손님이야. 와서 지 맘에 들면 그냥 골라서 하룻밤 보내는 그런 애라고. 너한테만 특별히 대해줄 줄 알았니? 내가 저 치랑 몇 년을 알고 지냈는줄 알아? 2년이야, 2년." 준식의 말은 사실 구구절절 맞았음. 고개를 떨구는 그래.


"어제 나으리 한 명 잡숫고도 배가 덜 불렀어? 요게 아주 욕심덩어리네, 보니까." 킥킥 웃는 준식. "야, 있는 손님이나 잘 챙겨라. 얼굴 믿고 까불다가 망할 수도 있으니까." 준식은 담배 끝으로 그래 어깨를 꾹꾹 찌르고 하하하! 웃으면서 사라짐.


고개숙인 그래 옆에서 한숨을 쉬는 동식. 준식의 말은 가시돋치긴 해도 다 맞는 말이었음. 어제 천 대사헌을 받은 주제에 아침이 되자마자 다른 기생과 밤을 지샌 한 도사를 힐난하다니. 기생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주제넘은 행동이었음.


"장그래, 어린애 아니잖아? 그치?" 동식은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 한숨 한번 쉬고 이정도로 그쳤음. "그나저나 어제 나으린 잘 모셨어?" 고개를 숙이고만 있던 그래가 다시 한 번 입을 힘들게 열었음. "그게...저...." "뭐야 대답이 이상하다?"


"나으리가..주무시고 계셔서.." "뭐? 그렇다고 너도 그냥 잔 거야?" "그게,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 결국 이마에 손을 탁 하고 얹는 동식. "아이고~ 죽겠다. 장그래 너 진짜..." 한편으로는 아직도 장그래가 '새 상품'이니 나쁘지 않기도.


끝내 장그래는 아침부터 동식에게 잔소리를 잔뜩 듣고 말았음. 게다가 장마철이라 그런지 오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우울한 그래의 마음은 더 우울해짐. 단 한 번 본 석율에게 그 이상의 친절과 관심을 기대했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나 그래는 감상에 빠져있을 사이도 없었음. 마루 끝에 앉아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보는 그래를 본 준식이, 어서 청승떨고 앉았냐고 재수없다고, 할 일 없으면 걸레질이라도 하라고 갈구는 바람에 결국 또 바닥에 엎드려 박박 걸레질을 해야 했음.


그 날 저녁은 비가 와서 그런지 한산하고 사람도 별로 없었음. 피크 시간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손님이 들지 않아 분위기가 쳐져있는 기생들. 그 때 예상치도 못한 놀라운 인물이 기방 대문으로 들어옴. 문을 열어준 종들도 좀 놀라는 눈치.


바로 어제 기방에 와서 밤을 지새고 갔었던, '높으신 나으리' 천관웅 대사헌이 따르는 종도 없이 홀 몸으로 불쑥 다시 찾아온 것. 깜짝 놀라 맨 발로 뛰어나가는 동식. "대사헌 나으리! 어서 오세요. 아이고 다 젖으셨네요! 수건 대령하겠습니다."


준식과 그래도 놀라는 눈치. 과연 관웅은 어제 자길 모셨던 두 기생, 준식과 그래 중 누굴 찾으러 온 것일까. "내 이 친구와 잠시 있게 해주게." 관웅이 가리킨 것은 장그래였음. 다시 한 번 빡이 오르는 준식. 아, 씨이발. 존심 상하네 이거?


준식이 이를 득득 갈며 장그래를 째려보는데 그래는 그런 준식의 시선을 느끼고 조금 움츠러들어 자신의 방으로 관웅을 안내함. 그래와 단 둘이 방에 앉게 된 관웅. 잠시 후 가벼운 주안상이 들어오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다 관웅이 먼저 입을 여는데.


"내 어제 너를 내버려둔 것이 마음에 걸려..." 그리고 품에서 뭔가를 뒤적거려 꺼내는데, 그것은 연고였음. "예쁜 얼굴을 어쩌다 다쳤느냐? 이걸 바르면 금세 나을 것이다." 그래는 깜짝 놀라 약을 받아들었음. 석율도 못 알아봤던 입술의 상처를.


그래는 약을 보자 갑자기 지금까지의 설움이 북받쳐 왈칵 하고 눈물이 차오름. 눈가가 점점 벌개지는 느낌에 스스로도 당혹스러운 그래. "아가야, 왜 우느냐?" 난데없이 울먹거리는 그래를 보고 당황한 관웅이 손가락으로 떨어지려는 그래의 눈물을 닦아줌.


그래는 나으리가 달래주자 더욱 설움에 북받쳐 눈물을 닭똥처럼 후두둑 흘리기 시작했음. 어깨를 움츠리고 눈물을 꾹 참으려 하지만 그게 되질 않아 결국 눈을 꼭 감고 우는 그래. 어쩔 줄 모르던 관웅은 결국 말없이 그래를 꼭 안아줌.


한참을 관웅의 품에 안겨있던 그래는 눈물을 다 그치고 나서야 내가 지금 무슨 응석을,하고 몸을 관웅에게서 뗌. 관웅은 억지로 붙잡지 않고 그래를 놔주었음. 관웅은 그래의 얼굴을 좀 보다가, 그래의 손등을 붙잡아 연고 뚜껑을 열고 자신의 손가락에 바름.


"자, 상처를 좀 보자꾸나." 상냥한 말투로 어르며 입가에 연고를 발라주는 관웅. 유난히 빨간 입술에 관웅의 기다란 손가락이 스치듯 닿아 간질간질. 그제서야 그래는 관웅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게 되었음. 어제는 최 영의정 접대하느라 정신없었고.


술먹고 뻗은 뒤 아침에 후닥닥 나갔기 때문에 뭐 제대로 얼굴 볼 시간도 없었던 것. 그런데,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얼굴은 한석율이라고 생각했던 그래였는데... 그래는 넋을 읽고 천 대사헌의 얼굴을 바라봄.


둥근 이마와 솟은 눈썹뼈, 움푹 들어간 눈매와 높고 큰 코. 네모난 턱까지 그래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음. 와, 이게 어른 남자구나. 한 도사와는 또 다른 느낌...정말 잘 생겼다, 게다가 기골도 장대하시고.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그래.


그러나 얼굴에 감탄하고 있기로는 관웅도 마찬가지였음. 어제부터 그 흰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거니와, 사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찌나 고운지. 게다가 나이도 너무 어려보여 왜 저런 아이가 기방에 있는 건가 의아했던 것.


그런데 어제 한 도사가 귀띔하기를 아직 처녀라 하고, 자기는 그저 쿨쿨 잠들었으니 이 어린아이 처지가 난처했을거라 생각이 미친 것. 물론 그래봤자 기생인데 다 씹을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입가의 상처와 더불어 그래 생각이 머리에 박혀있던 것.


그래서 직접 내의원에 방문해 잘 듣는다는 연고를 들고 갖다주러 이 비오는 날에 직접 기방에 온 것이었음. 약을 발라준 뒤 서로 말없이 쳐다보는 두 사람. "아까는 왜 울었느냐..?" 그래의 눈가에 조금 남아있는 물기를 엄지손으로 닦아준 관웅이 물음.


어떻게 어머니가 아프다, 기방에서 구박을 받는다 이런 말들을 할 수 있을까? 기방에 사연 없는 기생이 어디 있고, 막내가 갈굼 안 받는 기생집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는 "그냥..비가 와서요..."라고 대답하는데, 관웅도 더는 묻지 않고.


그저 그래에게 이렇게만 말하는 관웅. "내가 여기 더 있으면 너도 좀 더 쉴 수 있느냐?" 그래는 가만히 관웅을 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림. "그럼 너도 한 숨 붙이려무나. 나도 그럴 테니까." 순간 그래는 당황함. 이거 혹시...그건가?


긴가민가 하며 관웅 말대로 요를 까는 그래. 그러나 관웅은 그래를 건드리지 않고 요 위에 가만히 누워 그래를 손짓으로 부름. 머뭇머뭇 하면서도 관웅의 옆자리에 가 눕는 그래. "힘들 때 잠을 자면 좀 도움이 된단다." 눈가에 주름이 지도록 웃는 관웅.


그렇게 서로 마주보다가 관웅이 먼저 눈을 감고, 그래도 슬그머니 눈을 감음. 심신이 지쳐있던 그래는 금방 곯아떨어짐. 규칙적인 숨소리에 이어 도롱도롱 코고는 소리가 나자 감았던 눈을 뜨는 관웅. 그 때 밖에서 관웅을 찾아온 몸종의 소리가 들리고.


"나으리, 마님께서 찾고 계시옵니다." 관웅의 부인은 세도가의 여식이었음. 아버지의 위세를 등에 업고 관웅에게도 강한 소유욕을 드러냈음. 어차피 정략결혼이었기에 얼굴 볼일도 별로 없었지만 혼인전 애지중지 받들리며 살다 혼인후 관웅의 무관심을 못참음.


관웅은 한숨을 쉬고 그래가 깰까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남. 석율만큼이나 출세에 강한 야망을 갖고 있는 관웅에게 부인과의 관계는 끊기 힘든 것이었음. 관웅은 마지막으로 그래를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 동식에게 "아이를 깨우지 말게" 당부하고 돈을 쥐어줌.


그렇게 관웅은 가고, 그래가 계속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정도 훨씬 지난 깊은 밤, 갑자기 술취한 준식이 그래의 기방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옴. "야 이년아! 일어나,얼른." 난데없는 준식의 패악질이 시작된 것임.


깜짝 놀라 와르르 몰려나오는 기방 사람들. 준식은 술병을 한 손에 쥔 채 그래를 발로 차고 있었음. "이 앙큼한 년이, 한 서방만으론 성에 차지가 않던? 응? 높은분이 좀 귀여워 해주니까 뵈는 게 없지?" 준식은 본능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것.


그래는 암 말도 못하고 그냥 발길질을 당하고만 있고, 기방서 제일 잘나가는 준식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동식이 간신히 사람들 헤치고 나와서 "야 그만해 그만~! 애 잡겠다! 애 잡아!" 하면서 그래를 감싸 간신히 데리고 나옴.


관웅이 발라준 약이 무색하게 그래의 얼굴은 또 여기저기 상해 있었음. 일부러 얼굴을 집중적으로 때린 것 같다고 생각하는 동식. 그러나 동식도 준식을 말릴 수는 없었음. 일단 준식이 관리하는 손님이 기방의 50%를 넘었음. (캬 에이스~~)


그 날 아침이 올 때까지, 그래는 준식을 피해 기방 뒷쪽의 짐 놓는 골방에 앉아 관웅이 준 약통을 보며 훌쩍훌쩍 울었음.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또 어김없이 시작되는 고된 노동들과 준식의 구박...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음.


준식이 하도 난리를 쳤기 때문인지, 이제 손님이 와도 동식은 일부러 그래를 피해 지명을 넘겼음. 그래한테 좋은 손님을 주면 또 어떤 사단이 날지. 동식의 마음 속에 측은함이 있었음. 결국 한창 꽃이 피기 시작할 때인 그래는 기방 노비같은 존재로 전락.


그러던 어느날, 예고도 없이 한석율이 찾아옴. 매일 도장을 찍던 양반이 그동안 어쩌고 이렇게 간만에? 궁금하면서도 반갑게 맞아주는 동식. 준식 또한 흥! 하고 콧방귀를 끼는척 하지만 슬쩍 나와 한 도사를 맞아주고. 석율은 웃으면서 한 상 차려달라 함.


간만에 온 석율을 접대하는 것은 준식. 여전히 틱택거리지만 그래도 석율과는 2년간 미운 정이 든 것. 석율은 준식과 그간 업무로 바빴다느니 근황을 얘기하고는 "그런데, 그 아이는?"하고 물어옴. 듣자마자 그래 얘기인걸 눈치까는 준식.


"그 아이라니 누구 말씀이세요?" 모르는 척 하며 석율의 술잔을 채우는 준식. 석율은 "왜, 그 하얗고 빨간 아이 있지 않느냐. 입술이 도톰하고..." 막 생김새를 설명함. 그제서야 준식은 뚱하게 "아, 그 애요."하고 대답함.


"뭐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서 요즘은 허드렛일이나 시키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준식은 자기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완샷을 해버림. 나 앞에 두고 다른 애 얘기하지 말라 이거였음. 눈치빠른 한 도사는 "우리 자기 삐졌어?" 하고 어깨를 끌어안음.


"아 떨어져요, 더워 죽겠구만!" 짜증 팍팍 부리는 준식. "에이 오늘 술맛이 왜이래? 나으리, 술맛이 X같죠?" 바로 이런 맛(?)에 석율이 준식을 찾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더이상 그래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지만, 석율은 그래의 안부가 퍽 궁금해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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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웅그래/천그래] 불륜 임신 막장 썰② (트위터 백업 7/23)

ㄴ미생 기타 2015. 7. 23. 19:35

관웅은 허겁지겁 멜론을 사서 그래의 병상으로 와보지만, 그래는 이미 잠들어 있음. 허탈한 관웅. 내가 더 일찍 와서 먹이고 재웠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에 그래의 옆에 앉아 고개를 떨구는 관웅. 오늘 있었던 일 모두 자기 책임이었고, 그래는 자신의 우유부단 때문에 희생된 것이 분명했음. 이 어린애가 뭘 안다고 이런 몰골이 되도록 맞아야만 했을까? 관웅은 자신이 너무 미웠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부인이 쉽게 이혼해줄 것 같지 않았음. 이미 진흙탕에서 뒹굴게 되었는데 이제 장그래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그것이 문제였음. 그래의 배는 나온듯 아니나온듯 미묘했음. 관웅은 손을 가져가 그래의 배를 만져보았음. 아직 80여 일.

3개월, 늦어도 4개월 째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그래를 데리고 왔던 것이 생생했음. 도대체 난 무슨 생각으로 집을 얻어줬던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그래의 아이를 지울 생각따윈 없었던 게 아닐까. 자고있는 그래의 얼굴은 더욱 어려보였음.

그리고 그 순간, 그래가 눈을 반짝 하고 떴음. 그래는 엉망이 된 얼굴로 관웅을 불렀음. "과장님..." "그래야, 깼어?" 관웅은 황급히 의자를 끌어당김. 그래의 손을 꼬옥 잡아주는 관웅.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희미하게 웃는 그래.

"과장님, 좋은 냄새 나네요." "응?" "멜론 사오셨어요?" 그 와중에 그래는 귀신같이 과일 냄새를 맡은 것. 고급이라더니 숙성한 멜론의 향이 병실에 진동을 하고 있었음. "아,그래. 여기 있어. 지금 먹을래 그래야?" "...네에..."

그래가 대답하고도 조금 얼굴을 붉혔음. 아무래도 기어이 멜론을 먹어야만 이 욕망이 가라앉을 모양이었음. 'ㅂ` 관웅은 칼도 접시도 없다는 걸 생각해내고 이마를 탁 치더니, "잠시만 기다려 그래야."하고 다른 병실의 보호자에게서 빌려옴.

허둥거리는 관웅의 모습에 그래는 웃음이 나왔음. 그래는 깨어나 과일 향기를 맡은 뒤부터 이미 기분이 좋아져 있었음. 지금 관웅의 모습은 꽤나 새신랑, 혹은 아기아빠 같은 모습이었음. 관웅은 그릇 위에 멜론을 올려놓은 뒤 힘좋게 썩 하고 반으로 잘랐음.

그렇게 몇번 더 잘라낸 뒤, 먹기 좋게 칼집까지 내서 그래의 앞에 대령한 관웅. 물이 줄줄 흐르는 멜론에 그래의 입이 벌어졌음. "자, 그래야 아 해." 관웅은 포크로 하나를 집어 그래의 입 앞에 대령했음. 이런 낯부끄런 짓은 신혼 때도 안하던 것.

평소의 냉정하고 칼같은 천관웅 과장의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라, 그런 관웅을 바라보는 그래의 얼굴이 빨개질 정도였음. 그러나 관웅은 완전 아무렇지 않은 표정. "아 해봐, 그래야." 그래의 귀까지 빨갛게 익어버리고.

그래는 뜨거워지는 얼굴을 느끼며 입을 아 하고 벌렸음. 관웅이 통이 큰 것인지 멜론도 큼지막하게 썰어놔서, 힘껏 벌려야 받아먹을 수 있었음. 그래는 입가에 과즙을 묻힌 채 오물거리기 시작했음. 단맛이 한껏 입안으로 퍼졌음.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음.

"마...마이허요." 그래는 우물거리면서 명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대꾸했음. "응 뭐라고?" 관웅은 못들은 척 하면서 이미 하나를 더 집어 그래의 입 앞에 대령하고 있었음. 간신히 꿀꺽 첫 조각을 삼킨 그래는 다시 한 번 말했음. "맛있어요."

관웅이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웃었음. "맛있어? 그래의 머리를 한 손으로 슥슥 하고 쓰다듬는 관웅. "자, 또 먹어." 그래는 입을 앙 벌려서 또 하나를 받아먹었음. 달콤한 과즙이 입 구석구석 퍼져나갔음. "마이허요." "그래. 많이 먹어 그래야."

웃는 것 같던 그래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음. 멜론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그래. "...마잇어요." 불분명한 발음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돌려 관웅에게 웃어보이고. 그런데 왜 눈물이 그치지 않는지. 관웅의 가슴이 찌잉 하고 아파옴.

그대로 그래를 꽈악 끌어안아주는 관웅. 그래는 관웅의 팔에 매달려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음. "흑,으흑..." "그래야,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하다." 그렇게 그래는 한참을 관웅의 품 안에서 흐느꼈음. 셔츠가 젖어오는 것이 그대로 느껴짐.

관웅은 그래의 얼굴을 조심스레 돌려봄. 고집스럽게 관웅의 품 안에 얼굴을 묻으려는 그래. 그러나 관웅의 부드러운 손길에 결국 지고 맘. 얼굴을 돌리자 눈물 콧물로 엉망인 그래의 얼굴. 관웅은 쉬이-하면서 그래를 달래고 손으로 그래 콧물을 닦아냄.

그래는 당황해서 "더,더러워요" 하며 관웅이 만지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관웅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얼굴. 끝까지 그래 얼굴에 묻은 끈적한 타액을 손으로 훔쳐 근처 물수건에 닦아내고, 다시 한 번 새 물수건을 뽑아 그래 얼굴을 깨끗이 씻겨줌.

그야말로 둘 사이엔 가릴 것도 더러운 것도 없다는 그 행동에 그래는 몹시 부끄러우면서도 관웅의 다정함을 느낌.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따뜻해지는 그래. 관웅은 웃으면서 그래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맞춤. "...더 먹을래?" 한없이 다정한 그 눈빛.

"네, 더 먹을래요." 그래의 목소리엔 기운이 조금 돌아와 있었음. 작고 어리고, 강한 것 같으면서도 여린 아이. 관웅은 다시 한 번 이 아이 곁에는 자신이 있어줘야만 한다고 생각함. 그래는 이런 관웅의 마음을 아직은 몰랐지만, 곧 느끼게 될 것을.

그 날은 병실에서 지새고, 그래는 이틀 휴가를 냈음. 관웅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됨. 보다 안전하고 보안이 철통같은 곳으로.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지금같은 원룸이 아니라 점점 큰 집을 생각하게 되고.

마음같아선 빨리 부인과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래와 살고 싶었지만 쉽지 않은 길이 될 것 같았음. 관웅은 다시는 그래의 눈물을 보고싶지 않다고 강하게 마음을 다잡았음. 한편, 그래는 집에 있지 말라는 관웅의 말에 따라 휴가동안 호텔에 묵게 되었음.

관웅이 잡아준 호텔은 남산쪽에 있는 고급 호텔이었음. 이런 곳에서는 처음 묵어보는 그래. 자신의 본가는 허름한 달동네였고, 여행같은 것도 잘 다닐 기회가 없었음. 상처난 얼굴을 감추느라 후드 푹 뒤집어쓰고 관웅과 함께 체크인한 그래는 깜짝 놀람.

"저...과장님, 괜찮은 거에요?" "뭐가?" "숙박비가..." "넌 신경쓰지 마." 관웅은 웃으며 그래를 바라보고 벨맨의 안내를 받으며 룸으로 올라갔음. 그래가 자신의 크지도 않은 짐가방을 날라주는 벨맨을 보며 당황하자 관웅이 내버려두라고 함.

방은 꽤 사이즈가 있는 더블룸이었음. 위치 때문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경치도 매우 좋았음. 돈은 좀 들었지만 그래를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다는 관웅의 맘이 담겨있기도 했음. 그래는 처음 투숙하는 고급 호텔에 잔뜩 들떴음.

관웅은 통유리로 된 창가에 달라붙어 정신없이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그래를 보며 피식 웃고는 넥타이를 풀었음. 그 모습을 보던 그래의 귀가 빨개졌음. 눈치챈 관웅이 "왜?"하고 묻자, 그래는 고개를 푹 숙였다가 개미만한 목소리로 "멋있어서.."라고 함.

관웅은 피식 웃고는 나머지 옷을 마저 갈아입음. 편한 평상복 차림이 된 관웅. "내려가서 밥 먹자, 그래야." 관웅은 그래를 데리고 호텔 부페로 갔음. 그래는 신나서 이것저것 담아 양껏 먹음. 조그만 몸에 많이도 들어간다 생각하는 관웅.

둘은 후식까지 끝내고 다시 룸으로 돌아옴. 그래의 기분은 한결 나아진 것 같았음. "그래야, 상처 좀 보자." 관웅이 침대 위에 앉아 그래를 불렀음. 그래는 쪼르르 관웅이 부르는 대로 가서 관웅 옆에 앉음. 관웅은 조심스레 연고를 발라주었음.

간질거리는 관웅의 손길에 그래의 표정이 버라이어티해졌음. 눈썹뼈를 계속 실룩거리자 관웅이 웃으며 "얌전히 있어야지,"하고 타이르고. 관웅의 긴 손가락이 그래의 찢어진 입술가를 매만질 때는 그래의 기분이 약간 야릇해짐. 눈을 내리까는 그래.

관웅의 눈에 곱게 빠진 그래의 눈매, 그리고 촘촘한 속눈썹이 들어옴. 관웅은 저도 모르게 그래의 턱을 움켜쥐고 도톰한 아랫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봄. 그래는 이미 귀까지 빨개져 있었음. 그래의 속눈썹이 떨리는 것을 본 관웅은 고개를 기울여 입맞춤.

둘의 분위기가 미묘해졌음. 고개를 계속 기울인 채 그래의 눈을 마주보는 관웅. 그래는 잔뜩 빨개진 얼굴로 용기를 내서 관웅의 두 팔을 잡은 채 제가 먼저 입을 갖다 댐. 서툴기만 한 이것을 키스라고 불러야 하는가?

관웅은 입꼬리를 끌어당기고는 그대로 그래의 두 팔을 누르며 침대 위로 눕힘. 만세 자세로 관웅의 밑에 갇혀버린 그래. 관웅은 재빨리 그래의 입술에 다시 키스했음. 이번에는 아주 깊게. 그래도 기꺼이 입을 벌리고 관웅의 혀를 맞아줌.

두 사람의 다리가 점차 엉켜들었음. 관웅의 깊은 키스에 호흡곤란을 느낀 그래. 뒤로 느껴지는 푹신한 시트도 마음에 들었음. 입술을 뗀 관웅이 그래의 눈동자를 쏘아보며 자신이 입고있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푼 뒤 벗어버렸음.

가쁜 호흡을 내쉬며 관웅을 바라보고 있는 그래. 관웅은 곧 그래의 헐렁한 후드티도 벗겨버림. 아래에 드러나는 면티. 관웅이 웃으며 "많이도 껴입었네."라고 한마디 하자 그래의 얼굴이 새빨개짐. 관웅은 그대로 그래의 바지도 벗겨 침대 밑으로 던져버림.

나신이 된 그래를 감상하듯 위아래로 훑어보는 관웅. 그래는 관웅의 시선이 부끄러웠는지 "불 꺼주세요.."라고 조그맣게 항의하듯 말하고. 관웅은 태연하게 "왜? 난 더 보고싶어."라고 하며 빙긋 웃음. 관웅의 시선이 그래의 얼굴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고,

가슴에서 배로 내려오더니 한동안 가만히 보고만 있음. 아직 납작하게만 보이는 이 뱃속에 새 생명이, 내가 그래에게 만들어준 아기가. 관웅은 와이프가 임신했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묘한 기분을 느낌. 이 장그래가 대체 뭐길래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

그래도 뭔가 의미심장한 관웅의 시선을 느낌. 관웅으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뀐 건 그래도 마찬가지였음. 그래의 인생은 완전 급전환했음. 오메가인걸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발정기를 맞고 알파와 관계를 맺고.

단 한번의 관계로 뱃속에 생겨버린 새로운 생명. 직장 상사이자 가정과 아이가 있는 유부남에게 홀린듯이 빠져든 자신. 정말 예전의 그래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음. 말하자면 자신은 세상 모두가 돌을 던지는 '불륜'이란 것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그래에게는 이 사랑이 세상 전부였음. 관웅이라는 남자가 그래에게는 전부였음. 어쩌면 이 아기는 관웅을 붙잡기 위한 도구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음. 그만큼 그래는 사랑에 눈이 멀어 있었음. 그래는 몰랐지만 그것은 관웅도 마찬가지였음.

관웅이 부인이고 자식이고 모두 버리고 자신을 택하려 한다는 것을 그래는 전혀 몰랐음. 그래에겐 이 관계가 그저 위태한 짝사랑 같기만 했음. 때문에 관웅이 자신에게 잘해줄 때마다 오히려 그래는 불안했음. 그렇다고 이혼해달라고 할 수도 없었기에.

관웅은 그래의 옆구리를 붙잡고 말랑한 배에 입을 맞췄음. 그래의 얼굴이 확 붉어졌음. 그 때 관웅이 뜻밖의 말을 꺼냈음. "그래야, 우리 아기 낳자." 순간 놀란 그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음. 관웅은 곧은 시선으로 그래를 바라보고 있었음.

그래는 너무 놀라 더듬거리며 관웅에게 물었음. "나, 낳자고요? 아기를?" "그래." "하,하지만 과장님은," 그래가 침을 한 번 꿀꺽 삼켰음. "과장님은...부인도 아기도...있으시잖아요." "나 이혼할 거야." 연이은 충격에 그래의 입이 벌어짐.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래의 머릿속에 내용들이 정리돼 들어오기 시작. 자기로 인해 한 가정이 망가지고 파괴된다. 부인과 이혼한다는 건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 몰래 바라던 일이었음. 그러나 막상 그게 실현되는 건 상상해본 적 없었음.

게다가 아이는 또다른 문제였음. 그래가 알기로 관웅의 아이는 돌이 좀 지난 어린 아이였음. 그 아이까지 버린다는 이야기인가? 그럼, 나로 인해 그 부인과 아기 모두? 불행해지는 건가? 갑자기 이렇게 버림받고? 그래가 급격히 패닉에 빠졌음.

관웅은 그래의 흔들리는 눈빛을 눈치챘음. 이혼할거라 얘기하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의 반응은 뜻밖에었음. 그래는 물론, 여전히, 아이를 지우고 싶지 않았음. 원래 그래는 관웅을 향한 마음이 깊어졌던 순간 혼자 낳아 키울거라 마음먹었었음.

그래의 마음이 요동쳤음. 아냐. 내가 바랐던 건 이런게 아냐. 아니,바랐던 건가?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건가? 갑자기 버림받는다면, 나같아도 부인처럼 상대를 죽여버리고 싶었을 거야. 역시 내가 잘못한 거야, 내가 모든 불행의 근원이야.

진작에 지웠어야 해, 과장님에게도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괜히 욕심부려서 모두가 불행해....나 하나 때문에..... 그래의 어깨가 떨려오기 시작했음. 관웅은 재빨리 그래의 뺨에 손을 얹고 말했음. "장그래, 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그래가 떨리는 목소리로 관웅을 올려보며 말했음. "과,과장님...저어....돌아갈래요...." "무슨 소리야? 어디로?" "저...다시 집으로...본가로..." 관웅이 놀란 표정을 지었음. "왜그래 갑자기? 그래야," 그래의 어깨를 흔드는 관웅.

"도,돌아가야 돼요. 그래야 돼요." 그래는 갑자기 맨몸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포즈를 취함. 당황한 관웅이 그래의 팔을 붙들었음. "그래야 대체 왜그래," 뒤돌아본 그래의 눈이 젖어있었음. "제가,제가 다 잘못해서...그래서..."

그래는 제정신이 아닌듯했음. 그러나 그에 앞서, 관웅에게는 그래의 말이 자신을 떠나겠다는 선언으로 들려왔음. 관웅 또한 약간씩 흥분하고 있었음. "대체 그 몸으로 어딜 간다는 거야, 장그래," 관웅이 끌어당겼지만 그래 또한 완고했음.

"놔,놔주세요 과장님, 집으로...!" 결국 화가난 관웅이 그래를 홱 하고 끌어당겨 다시 침대 위로 짓눌러버림. 관웅의 두 팔 밑에 갇히게 된 그래. "넌 아무 데도 못 가, 장그래." 관웅은 대체 그래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음.

관웅 또한 이미 그래에게 빠질 대로 빠져 있었음. 어느 순간부턴가 급격히,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젊고 어린 그래의 순수한 마음보다 어른인 관웅의 이 마음은 훨씬 뜨겁고 한편으로는 음침한 것이었음.

이대로 그래의 손을 놓는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음. 그는 이미 부인과 양쪽 집안에 이혼을 선포했고, 관계는 파탄났음.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있는 것은 그래가 아니라 관웅이었음. 관웅은 자신의 모든 걸 버리고 이미 그래를 선택하고 있었음.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말이나 좀 해봐," 관웅이 추궁하자 그래는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이렇게 대답함. "저...때문에, 이혼하시면 안 돼요," 울먹거리는 목소리였음. "이혼하지 마세요." 관웅은 머리가 띵해졌음.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저만, 없어지면....흐윽," 기어이 그래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나왔음. 그러나 이미 관웅의 눈에는 뵈는 것이 없는 상태였음. "제가 없어져야 해요," 그래로서는 마지막 남은 양심을 쥐어짜는 것이었음. 그러나 관웅의 분노는 이미 찰 대로 차버리고.

"장그래, 뭐 하자는 거야." 비리게 웃는 관웅. "이제와 내숭이라도 떠는 거야?" 그래가 깜짝 놀라 눈물이 흐르던 눈을 크게 뜸. 관웅은 그래의 팔목을 붙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다시 말했음. "지금 와서 착한 척이라도 하고 싶어?"

관웅이 서슴없이 내뱉는 그래를 상처주는 말들에 그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관웅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음. "돌아가? 어디로. 집으로 가겠다고? 그럼 애초에 집에서 나오지 말았어야지. 내가 얻어준 집에 냉큼 들어와 놓고 이제와서 어쩌겠다고?"

자신의 분노때문에 미처 그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관웅은 해서는 안 될 말까지 그래에게 쏟아붓고 있었음. 모두가 그래가 자신을 떠나려고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음. "아니지, 그렇게 따지자면...아예 내게 말을 말았어야지?"

그래의 눈동자가 흔들림. "처음부터 아이를 가졌다는 말 따위 말았어야지, 어차피 제자리로 돌아갈 거였다면. 혼자 처리하겠다며? 그러지 않았었어?" 관웅의 말이 칼처럼 그래의 심장을 난도질하고 있었음. 그래도 관웅은 멈추지 않았음.

"왜 얘기한 거지? 왜 굳이 내 앞에서? 아이를 가졌다고, 알아서 없애겠다고?" 그래가 거기까지 듣다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반항했음. "놔요, 이거 놔줘요...!!" 관웅은 꼼짝도 하지 않았음. 그래는 심장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았음.

"나한테서 뭘 원한 거야, 장그래? 응? 대답해 봐, 솔직하게." "놔요, 놔요 이거..!!" 그래는 온 힘을 다해 관웅을 뿌리쳤음. 그 마른 몸 어디서 이런 힘이 솟았는지. 그래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음. "이제...됐어요. 다....끝이에요."

그래는 몸을 숙여 침대 밑에 떨어진 옷가지들을 주워들었음. 그래의 손이, 아니 온 몸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음. 그래가 목메인 소리로 말했음. "끝이라구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뺨이 불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래의 몸은 침대 끝에 처박혀 있었음.

그래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바로 깨닫지 못했음. 그저 번쩍거리는 눈 앞과 지독히 아픈 뺨을 감싸쥐고 침대에 처박혀 황망하게 관웅을 쳐다보고 있었음. 너무 세게 쳤는지 곧 그래의 코에서 붉은 피가 주룩 하고 흘러내렸음.

그래는 관웅이 자신을 때리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음. 너무 놀란 그래는 그저 자기 손바닥 위로 뚝뚝 떨어지는 코피를 바라보고만 있었음. 겁에 질린 것도 아니었고 그저 멍했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관웅이 분노에 눈이 멀어 그래를 내려봄.


"네가.....나한테........" 관웅의 한마디 한마디가 이로 씹는 것 같았음. 관웅의 눈동자에 붉은 핏줄이 잔뜩 서 있었음. ".....다시는 그딴 생각 하지 못하게 해주지." 관웅이 그렇게 말하고 그래의 맨 발목을 잡아 주루룩 끌어당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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