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웅그래/그래른] 기생집 썅년 준식 & 애기 기생 장그래 썰 ② (8/5)

ㄴ미생 기타 2015. 8. 4. 16:58

 

준식은 눈알을 데구르르 굴리는 석율을 보고 금세 이놈이 그래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알아챔. 화가난 준식은 남자 기생 전용의 화려한 치마를 걷어올려 석율의 머리에 팍 뒤집어 씌워버렸음. 술잔을 입에 대고 있던 석율은 놀라 술을 엎어버림.

 

"우리 심심한데 나으리가 좋아하는 숨바꼭질이나 할까요?" 준식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석율을 꼬드겼음. 석율은 앙칼지고 짜증만 부리는 준식의 어디에 이런 애교가 숨어있었나 하고 피식 웃고는 그대로 준식을 쓰러트려 눕혀버렸음.

 

준식은 석율보다 꽤나 연상이었으나, 석율은 자신을 막 대하는 준식에게 매력을 느끼는 듯 했음. 지금까지 한번에 과거 패스, 도사까지 쭉쭉 영전한 자신에게 그렇게 대했던 한양 내 기생은 없었음. 준식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도도하기 그지 없었음.

 

언제 이 요망하고 얄미운 것을 함락시키나 했는데, 이제는 장그래라는 꼬마 덕분에 알아서 자신의 품에 팍팍 안겨들고 있으니. 준식아, 너도 결국 사람이고 기생이었던 것이구나. 석율은 낄낄 웃고 방 안에서 준식과 뒹굴며 수작을 부렸음.

 

한편 그래는 날이 갈수록 병든 닭마냥 시들시들해지고 있었음. 아마 석율이 보았다면 애기야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느냐? 하면서 맛난 것이라도 사다 먹였을 그런 수준이었음. 준식의 구박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험한 일을 하느라 온 몸이 상처 투성이였음.

 

그래의 낙은 오로지 높으신 나으리가 주고 갔던 예쁜 문양의 은색 약통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음. 바로 천관웅 대사헌이 주고 갔던 그 약통이었음. 낯선 이의 사소한 친절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던 그 날. 그래는 오로지 그 친절 하나를 보며 살고 있었음.

 

그 날, 그러니까 석율이 오랜만에 와서 그래는 찾지도 않고(준식 때문에 찾고 싶어도 못 찾는 것이지만) 준식의 기방에 틀어박혀 있던 그 날도 그래는 온갖 고된 노동을 한 뒤 뒷쪽 툇마루 구석에 오도카니 앉아 약통을 바라보고 있었음.

 

16살 꽃다운 나이에 기방으로 팔려와 노비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나날. 자신에게 친절을 보여준 유일한 사람이 남겨준 물건. 한 손바닥 안에서도 남아도는 그 작은 약통을 그래는 두 손으로 꼭 잡고 아롱아롱 눈물맺힌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음.

 

'높으신 나으리는 이제 다시 오지 않겠지. 그래도 난 이 분이 보여줬던 친절을 잊지 않을거야. 두들겨 맞았던 나에게 약도 발라주시고 누워서 쉴 수 있게도 해주셨어. 지금까지 아무도 내게 그리 해준 사람은 없었어. 정말 감사한 분이셔.'

 

그래가 눈물을 짓는 것은 외로움과 그리움 때문이었음. 그래는 기방 내에서 왕따나 다름 없었음. 그걸 주도하는 사람은 당연히 준식이었고. 동식만이 가끔 눈치를 보며 그래에게 군것질거리 정도를 챙겨주었음. 그래는 외로워서 죽어가는 작은 동물 같았음.

 

그래는 딱 한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한 번 대사헌 나으리를 뵙고 싶었음. 그 때처럼 나으리의 품에서 모든걸 잊고 편히 잠자고 싶었음. 하지만 벌써 한 달이 지났고, 높으신 분들은 기별도 없었음. 그래는 자포자기 단계에 접어들었음.

 

한편 관웅은 조정 업무와 집안 일로 정신이 없었음. 관웅의 부인은 말했다시피 세도가의 여식이었음. 아버지는 좌의정으로 왕비의 외척이었으며 기세가 등등했음. 말하자면 관웅은 권력을 위해 자기 스스로를 판 것이었음.

 

그런 관웅이 어떻게 부인을 무시할 수 있겠음? 사랑으로 한 결혼이 아니었길래 부인 또한 아버지를 등에 업고 기세등등 하였음. 때론 관웅을 무시하는 태도도 보였음. 둘 사이엔 자식이 두 명 있었는데, 딸 하나 아들 하나였음. 딸은 이제 3세,

 

그리고 아들이 바로 얼마 전 태어났음. 딸을 낳아 조금 의기소침하다 싶더니 아들을 생산하자 부인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음. 하지만 부인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음. 심지어 딸은 돌보지도 않았음. 관웅은 그런 부인에게 정이 없었음.

 

아들도 그나마 자신이 대를 이을 장자를 생산했다는 부심때문에 지금 잠시 끼고 도는 것이지, 부인 성정으로 미루어 보아 조금 크면 또 모르는 척 할 것이 뻔했음. 좌의정이 여식을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운 결과였음.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여자.

 

어쨌든 나랏일이 바쁘고 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기방에 드나들 여유따위 관웅에겐 없었음. 그러나 관웅은 그래를 처음 보고 왔던 날 이후, 계속 계속 떠올랐음. 굳이 둘째 날 그래에게 다시 돌아가 약을 쥐어주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음.

 

그래가 너무 보고싶던 관웅은 종자를 기방으로 보내 안부를 물은 적도 있었음. 그러나 그 때마다 준식의 눈에 걸려 안부는 커녕 그래에 대한 험담만 듣고 돌아갔음. 다행히 눈치빠른 종이 나쁜 소리는 전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렇게 둘이 보지 못한 지 거의 한 달 반이 되어갈 때, 아주 우연하게 거리에서 마주치는 일이 생김. 그래는 기방 사람들이 심부름을 시켜 장터로 외출했음. 그 때쯤 그래는 기생이라기 보단 완전 머슴이었음.

 

온갖 자질구레한 것까지 다 심부름 시키는 바람에 그래의 양 팔은 빠질 지경이었음. 그래도 아직 남은 물건이 있어 낑낑거리며 장을 보는 도중, 저잣거리 한가운데로 대사헌 나으리의 행차가 있다며 앞길을 여는 사람들이 튀어나옴.

 

그래는 길가로 밀려나는 그 와중에도, 대사헌이라는 명칭에 혹시나 하며 기대를 갖게 됨. 높으신 나으리가 지나갈 땐 머리를 바짝 숙여야 함에도 그래는 흘끗흘끗 올려다 봄. 대사헌은 공중에 들린 의자에 앉은 채 앞을 보고 있었음. 천관웅이 맞았음.

 

그래의 눈이 커졌음. 그렇게나 보고싶던 나으리였음. 아, 아...그래의 입에서 안타까움의 소리가 터져나왔음. "나으리,나으리..." 사람을 헤치며 관웅을 따라가려는 그래를 보고 보좌꾼들이 "이 거지새끼가...너 지금 뭐야?"하고 밀쳐냈음.

 

그래는 그제서야 자신의 모습을 돌아봤음. 어느새 자신은 남들이 거지로 오해할 만큼 볼품없고 초라해져 있었음. 누가 자신을 한양 제일 기방 명월관의 기생이라 믿어줄 것인가. 아니, 이대로라면 내가 그래라는 것을 누가 알아볼 수나 있을까?

 

"얼른 고개나 숙여 이 새끼야!" 보좌꾼들이 그래의 목덜미를 콱 잡아눌렀음. 그래는 아아,하고 아픔에 신음을 내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음. 주변 사람들이 어어 하며 소란의 중심에서 한발짝 물러나고, 작은 소동이 생긴 것을 깨달은 관웅이 뒤를 돌아봤음.

 

"아, 죄송합니다 대사헌 나으리."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보좌꾼들은 그래를 꾹꾹 바닥으로 짓눌렀음. 그래는 어떻게든 관웅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음. 보고 싶었어요,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나으리, 이 한 마디조차 할 수 없으니.

 

관웅은 이 웬 소동인가 하여 돌아보았다가, 두 눈에 흰 얼굴의 소년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확 들어왔음. 관웅 또한 이상하게 마음에 남던 아이가 아닌가.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지만, 저 얼굴은 분명, 명월관의 그 소년.

 

"멈추어라!" 관웅이 크게 호령했음. 보좌꾼들이 모두 얼어붙었음. "내리거라." 관웅은 거열꾼들이 의자를 내리자 좌석에서 일어나 그래 곁으로 다가갔음. 그래는 다가오는 관웅을 보며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음.

 

관웅은 그래의 바로 앞에 다가가 이렇게 말했음. "아가야. 이 모습이 무엇이냐?" 그래가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문 채 눈물을 참았음. 나으리가 날 알아보신 거야? 정말? 관웅은 그래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불렀음. "아가야"

 

"나으리...!" "어디 다치진 않았느냐?" 관웅이 손을 내밀어 그래의 뺨을 매만졌음. 머쓱해하는 보좌꾼들. 그래는 관웅의 친절함에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음. "나으리...나으리...!" 결국 고개를 떨구고 울음을 터트린 그래.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높으신 분이 저잣거리의 거지새끼에게 호의를 베푸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음. "어머...저것좀 봐..." 아녀자들은 젊고 잘생긴 관웅을 보며 쑥덕거리기 시작했음. 그래는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쩔 줄 모름.

 

나으리에게 내가 지금 폐를 끼치고 있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래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자리를 피하려고 함. 그러나 도망치려는 그래의 가는 팔목을 관웅의 큰 손이 잡아버림. "아가야," 그래가 돌아보고 이렇게 말함.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그래는 그렇게 말하고 도망치듯 인파 속으로 사라져버림. 관웅은 그래가 사라진 쪽을 향해 계속 손을 뻗고 있었음. 그래는 울면서 기방으로 돌아왔음. 얼마나 울었는지 짐보따리가 떨어진 눈물로 흠뻑 젖을 정도였음.

 

동식이 가장 먼저 그래를 보았음. "어, 야 너 왜 그래? 왜 울어?" 그래도 기방에서 그래를 걱정해주는 척이라도 하는건 동식 뿐이었음. 그래는 말없이 심부름 보따리를 내밀었음.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긴, 어? 아주 애가 얼굴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넘어져서 그래요..." 그래는 소매로 눈물을 슥 훔치며 거짓말을 했음. 동식은 그런 그래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가, 주머니를 뒤적거려 약과를 하나 꺼내 그래의 손에 쥐어줌. "너 이거, 저기 가서 몰래 먹어라."

 

그래는 동식에게서 간만에 따뜻함을 느꼈음. 아직 물기가 어린 눈으로 동식을 바라보고는 허리를 숙여 "감사합니다." 인사하고는 뒷마당 쪽으로 물러갔음. 동식은 그런 그래를 보며 혀를 쯧쯧 찼음. "애가 아주...반쪽이 됐네 반쪽이 됐어..."

 

그래는 정신이 없었음. 무엇보다 아까 본 관웅의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었음. 대사헌 나으리가 나를 보고 행렬을 멈추고, 직접 내려와 얼굴까지 만져주셨다. 꿈만 같았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단 하나,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관웅에게 보인 것이 마음에 걸렸음. 얼마나 보기 안좋았을까, 이런 모습. 그래는 그제서야 팔을 들고 자기의 앞뒤를 살폈음. 정말 거지로 본대도 할 말이 없을 모습이었음. 그래의 표정이 의기소침해짐.

 

그래는 자신의 고정석이 되어버린 툇마루 구석에 앉아 그저 이렇게 나으리의 얼굴을 본 것 만으로도 기적같은 일이며, 이제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음. 물론 깊은 맘 속에서는 다시 또 나으리를 더 가까이서 더 오래 보고 싶었지만 욕심이란 것을 알고 있었음.

 

"아가야"라고 처음과 다름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불러주며 뺨을 어루만지던 대사헌 나으리를 생각하니 그래의 얼굴이 감물이 든 것처럼 붉어졌음. "나으리..." 그래는 조용히 속삭이며 보물같이 여기는 약통을 꺼내어 바라봤음.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너 그거 뭐냐??" 앙칼진 준식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옴. 그래는 너무 놀라 허파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음. 그래는 벌떡 일어나 등 뒤로 약통을 감췄음. 그러나 소용 없는 일이었음. 준식은 한걸음씩 그래를 향해 걸어왔음.

 

"그거 뭐냐고 했잖아. 대답 안 해?" 준식이 약통을 본 것이었음. 그래는 순간 물건을 빼앗길까봐 공포에 사로잡힘. "아,이건,저," "꽤 비싸 보이는데. 너한테 그런게 왜 있어?" 준식의 눈매가 뾰족해졌음. "이리 내놔 봐."

 

손을 내밀고 가까이 다가오는 준식을 피해 그래는 슬슬 뒷걸음질쳤음. "제,제 거에요, 훔친 거 아니에요." "어? 누가 훔쳤댔어? 이새끼 봐, 말 하는거 수상하네." 기어이 그래 가까이로 온 준식은 홱 하고 순식간에 그래의 손에서 약통을 낚아챘음.

 

"도,돌려주세요!" 당황한 그래가 손을 뻗었으나 준식은 빙글빙글 돌며 몸을 피했음. "오호~? 이거 꽤 비싼 물건이잖아? 이런게 왜 너한테 있지?" "제 거에요, 받은 거에요!" "받아? 니가 누구한테 이런걸 받아?" 그래는 순간 입을 다물었음.

 

대사헌 나으리에게 받았다고 하면 준식이 성을 낼 게 분명했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라봤자 석율밖에 없었음. 이쪽도 성내긴 마찬가지. 결국 그래는 망설이다가 조그맣게 말했음. "...대사헌 나으리께 받았어요." "대사헌? 아, 천관웅 대사헌?"

 

"그...그러니까, 돌려 주세요." "이 속에 뭐 들었냐?" "야,약이요..." 그래는 간절하게 두 손을 내밀어 물건을 돌려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준식은 씨익 웃고는 약통을 제 주머니에 쏘옥 넣고 말았다. "그래, 돌려줄게."

 

그래가 말과 상반된 행동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음. "대신 나도 약 좀 쓰고 줄게. 그건 괜찮지? 요즘 자잘한 상처가 많이 나서." 준식이 빙글빙글 웃었음. 이미 돌려줄 생각은 없어 보였음. 하지만 약을 좀 바르겠다는데 뭐라고 할 말도 없었음.

 

"..." "야,왜그래? 내가 돌려준다고 했잖아!" 상심한 그래의 표정을 보고 준식은 소리를 질렀음. "아놔,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그것도 싫냐? 어? 쪼잔한 새끼가.." 역반하장으로 그래에게 뒤집어 씌우는 준식이었음. "아,아니에요. 쓰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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