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웅그래/그래른] 기생집 쌍년 준식 & 애기 기생 장그래 썰 <3> (11/24)

ㄴ미생 기타 2015. 11. 24. 15:22

결국 그래는 약통을 준식에게 빼앗기고 말았음. 말만 쓰고 준다는 거지 준식이 돌려줄 리도 없었고, 실제로 돌려주지도 않았음. 그나마 간직한 희망 비슷한 것이었는데 그래는 그 날 이후 더욱 메말라감. 그러다 결국 허드렛일을 하다 쓰러지고 맘.


누워서 소리없이 앓는 그래. 무슨 병인지도 정확히 몰랐음. 의원을 부르려 했으니 준식이 호들갑 떨지 말라고 막아버리고. 준식은 다들 하는 일인데 왜 너만 유난이냐고 일부러 듣는 데서 욕을 하기도 했음. 그래는 그저 방 안에 누운채 눈물만 줄줄 흘렸음.


보고싶은 나으리는 오지도 않고. 유일한 보물이었던 것도 준식에게 빼앗기고. 모두가 자길 따돌리고 매일매일 고된 일에... 그래는 너무 외롭고 너무 사무쳤음. 아픈 몸만큼 마음도 아팠음. 시름시름 앓아가는데도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는 그래.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웬 전령이 나타나 동식에게 말을 뭐라 전하고 감. 동식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고, 골똘히 고민하더니, 그래의 방으로 먼저 들어감. 누워서 밭은 숨만 쉬던 그래는 간신히 동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음. 일어서지도 못하는 그래.


"야, 이거 너한테 처음 말해주는 거야. 준식이 알면 또 난리치겠지만..." 입을 떼는 동식. 그래는 대체 무슨 일인가 하여 열오르는 머리로 동식을 빤히 쳐다봄. "며칠 안에 천관웅 대사헌께서 기방에 들르실 거야. 오늘 전령이 알리고 갔어."


"그런데 너가 이렇게 아프면, 모시지도 못할 거 아냐. 그러까 잘 먹고 기운 잘 차리고 있어라, 응?" 그렇게 말한 동식은 후다닥 나가버림. 그래는 동식의 따뜻함을 느낌과 동시에, 천관웅이 온다는 말에 심장이 갑자기 격하게 뛰기 시작했음.


대사헌 나으리가? 대사헌 나으리가 오신다고? 지난 번 저잣거리서 뵈었던게 마지막이었는데... 보고 싶어! 나으리가 보고 싶어. 내가 모시고 싶어! 준식 선배가 아니라, 내가! 정말 그리웠어, 너무 그리웠어! 죽을 것 같았는데...!!


죽어가던 그래의 눈빛에 반짝반짝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음. 그래는 이런 그리움이 뭘 뜻하는 것인지도 몰랐음. 이런 애틋함이 뭘 의미하는지도. 그저 머릿속에 대사헌 나으리를 뵙고 싶다는 생각 하나 뿐이었음. 그래는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앉음.


그리고 머리맡에 있는 거울로 자기 외모를 살핌. 삐쩍 마르고 초라하기 그지 없었음. 그래는 침착하게 간호용 천에 물을 적셔 자신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음. 얼굴을 닦은 후에는 머리칼을 빗고 동백기름을 발랐음. 그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음.


갑자기 살아나는 그래를 보고 기분이 안좋아 진 것은 당연히 준식이었음. 이년 봐라? 내가 아주 짓밟아 놓고 천 대사헌이 줬다는 물건까지 뺏었는데도 아직 기가 살아있네? 이런 느낌이었음. 준식은 이참에 그래를 끝까지 밟아 내쫓자고 결심함.


그러나 준식이 아무리 구박의 강도를 높여도, 며칠 내 천 대사헌을 본다는 희망이 생긴 그래는 눈이 반짝반짝했음. 아무리 고된 노동을 시켜도,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줘도, 때리고 꼬집어도 견뎌냈음. 그래는 동식에게 자신의 옷을 골라달라 부탁.


적어도 대사헌 나으리가 오실 때는 가장 예쁜 모습으로 맞고 싶었음. 아무리 자기가 지금 피골이 상접하고 피부도 말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예쁘게 보이고 싶었음. 가장 예쁜 모습으로. 동식은 어쨌든 높은 분이 온다니까 그래 말대로 옷을 고르기 시작.


그리고 드디어 준식의 귀에도 천관웅이 온다는 소식이 들어감. 아주 화산처럼 폭발하며 성질내고 지랄을 떠는 준식. 그렇지만 아예 콕 그래를 지명해서 온다는데 자기가 어쩔 턱이 없었음. 준식은 저걸 밀어서 어딜 부러트려버려? 이런 못된 생각까지 하는데.


물론 준식이 썅년이라지만 그 정도까지의 썅년은 아니었음. 그냥, 분명 언젠가 그래가 자신의 에이스 자리를 넘볼 것 같았고, 실제로 그런 기미가 보여서 미움이 커진 것이었음. 그리고 그래의 어린 모습은 옛날의 자신을 많이 닮았었음. 준식은 그게 싫었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풀고, 암튼 드디어 천 대사헌 방문 전날이 되었음. 그래는 매일매일 머리와 몸에 기름을 바르고 깨끗하게 몸을 씻으며 나으리를 기다렸음. 준식은 눈꼬리를 35도로 치켜세우고 그래를 갈궜음. "좋냐? 너 그래봤자 내말 잊지 마."


"예..?" 마루를 닦던 그래가 준식의 목소리에 돌아봤음. 팔짱을 낀채로 그래를 내려보던 준식은 씩 웃으며 한마디 했음. "야, 내가 진짜 선배로서 해주는 말이야. 너 그런 놈들한테 맘 줘봤자..결국 너만 다친다." 넌 결국 노리개다, 이 소리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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